聖地 같지않은 국립묘지… 일그러진 현충일

  • 입력 2004년 6월 6일 18시 19분


현충일인 6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노점상들이 몰리고 술을 마시는 참배객들이 많아 경건해야 할 성역이 엉망이 돼 버렸다. 이날 정문 앞에서 노점상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이훈구기자
현충일인 6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노점상들이 몰리고 술을 마시는 참배객들이 많아 경건해야 할 성역이 엉망이 돼 버렸다. 이날 정문 앞에서 노점상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이훈구기자
제49회 현충일인 6일 낮 서울 동작구 국립묘지의 ‘평화의 집’ 잔디밭.

참배객 20∼30명이 돗자리를 깔고 미리 준비해 온 음식을 안주삼아 소주를 나눠 마시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도 이런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일부 참배객은 파라솔까지 준비해 와 ‘가족야유회’를 온 듯한 풍경이었다. 묘역 사이사이의 잔디밭에는 전날 마신 것으로 보이는 빈 소주병들이 널려 있었다.

여기에 사진이나 풍선, 간단한 요깃거리 등을 파는 노점상들도 묘역에까지 들어와 버젓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현충일 당일에는 차량 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에 아예 며칠 전부터 현충원 내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았던 상인들.

참배객 중에는 경건해야 할 분위기와는 걸맞지 않게 빨강 옷을 입거나 선글라스를 낀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는 국립묘지가 일부 참배객의 음주와 잡상인들의 호객행위 등 무분별한 행동으로 ‘성지(聖地)’로서의 면모를 잃은 지 오래다.

참배객들이 쏟아내는 쓰레기도 골칫거리.

올해의 경우 5, 6일 이틀 동안 총 14만여명의 참배객이 국립묘지를 찾았는데 2.5t짜리 트럭 20여대가 동원돼 50여t의 쓰레기를 처리해야 했다.

환경미화업체의 조모씨(63)는 “쓰레기 더미마다 각종 술병이 왜 그렇게 많이 쏟아져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참배객과 참전용사들은 당국에 화살을 돌리며 이름에 걸맞은 관리를 촉구했다.

6·25 참전용사인 김영수씨(70)는 “북한의 영웅묘역이나 일본의 야스쿠니(靖國)신사 등과 비교하면 국립묘지는 이름뿐인 성역이고, 이는 곧 전몰장병과 참전용사들을 욕되게 하는 행위”라며 관리사무소에 항의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 이광평씨(61)는 “먼저 간 전우들을 만나러 종종 오는데 참배를 하러 온 건지 주말을 맞아 야유회를 온 건지 헷갈린다”며 착잡해 했다.

시민 김정식씨(58)는 “관리사무소측이 입구에서 참배문화에 대한 홍보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복장이 불량하거나 주류를 반입하는 참배객, 잡상인 등의 출입을 통제해야 한다”며 “참배객들도 스스로 시민의식을 높여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충원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한 국가를 대표하는 성지인 국립묘지의 위상을 지켜 달라”는 글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관리사무소측은 “현충일 당일 오전 8시부터 오전 10시 사이에 3만4000여명이 집중적으로 입장하기 때문에 잡상인 등을 단속하기가 쉽지 않고, 참배 때 술을 갖고 오는 것은 전통처럼 인식돼 있어 제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사무소측은 “직원 70명으로 450만평에 이르는 묘역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현충원 관리과는 6일 오후 3시 현재 8만7000여명의 참배객이 다녀갔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9만6000여명, 2002년 10만8000여명에 비해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수치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김상훈기자 sanhkim@donga.com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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