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예쁜 여배우의 변신은 아마 절망으로 읽힐 것 같다. 아예 ‘그녀’임을 알아볼 수조차 없으니 말이다. ‘몬스터’의 모델 출신 금발 미녀 샤를리즈 테론의 얘기다.
18일 개봉 예정인 ‘몬스터’의 처음이자 끝은 미녀 배우의 끔찍한 변신에 있다. 키애누 리브스(‘데블스 애드버킷’ ‘스위트 노벰버’), 벤 애플렉(‘레인디어 게임’), 마크 월버그(‘이탈리안 잡’) 같은 할리우드 매력남들의 파트너에 머물던 그녀, 허가받은 관음증의 대상이던 그녀에게 이번만은 간청한다. 오, 샤를리즈, 제발 스크린에서 튀어 나와 내 곁에 앉는 일만은 말아주오.
이 영화는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으로 기록된 에일린 워노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워노스는 1989∼90년 6명의 남자를 살해한 혐의로 2002년 전기의자에 앉아 사형됐다.
학대받고 자란 에일린(테론)은 생계를 위해 13세 때부터 거리의 창녀로 나선다. 어느 날 문득 괴물처럼 망가진 자신을 발견한 에일린은 자살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술집을 찾는다. 그곳에서 천진한 소녀 셀비(크리스티나 리치)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둘은 싸구려 모텔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에일린은 과거를 청산하고자 한다. 그러나 생활력 없는 셀비는 에일린을 채근하고, 에일린은 할 수 없이 다시 매춘부로 나선다.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섹스를 하려던 남자를 총으로 쏴 죽인 에일린은 점차 양심에 거리낌 없이 살인강도 행각을 반복한다. 경찰은 수사망을 좁혀온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할리우드 섹시 여배우에게 레즈비언이자 연쇄살인범이라는 설정은 인내심의 테두리 안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튀어나온 누런 치아와 출렁거리는 뱃살, 거들먹거리는 웃음과 걸음걸이, 남이 먹던 샌드위치를 받아 씹으며 “대신 한번 해줄까?”라고 말하며 역겨운 웃음을 던지는 퇴물 창녀라면 얘기가 다르다. 아무리 그 대가가 아카데미상과 베를린 영화제, 골든글로브의 여우주연상 수상이라고 해도. 이 역을 위해 테론은 몸무게를 14kg이나 불리고, 둔탁한 보철을 끼웠으며, 라텍스를 덕지덕지 얼굴에 붙이고, 아예 눈썹까지 밀어버렸다.
여성 감독 패티 젠킨스는 에일린을 동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야기를 건조하게 펼쳐간다. 이런 태도는 ‘몬스터’를 스릴러성 킬러 무비가 아닌, 고전적이고 비극적인 한 편의 러브 스토리로 다가오게 한다. 이 영화는 에일린을 동성애에 발목 잡힌 연쇄살인범이라는 선정적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 사랑과 믿음과 질투와 배신이 얽히고설킨 지독한 러브 스토리의 희생자로 바라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는 관객과 보편적인 정서로 소통하게 된다. 이 영화가 욕망 대신 꿈을, 동성애 대신 사랑을, 취향 대신 숙명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에일린 워노스는 사형선고를 받는 순간까지 자신의 행동이 자기방어라고 주장했다고 전해진다. 운명의 장난일까. 에일린을 연기한 테론의 어머니 역시 알코올 중독 상태에서 흉기를 휘두르는 아버지를 쏘아 죽였던 자기방어의 슬픈 과거를 갖고 있으니…. 정작 ‘몬스터(괴물)’는 방아쇠를 당긴 그들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이고 파괴적인 이 사회일지도 모른다. 18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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