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내 10대 선수들은 10명이 채 안 된다. 그중 메달리스트 후보로 꼽히는 10대 선수들은 5명 안팎이다. 태권도 종목의 첫 고교생 올림픽 대표인 황경선(18·여·서울체고3), 사격 부문의 안수경(17·여·경기체고3)과 남자 사격 부문에서 12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는 천민호(17·경북체고2), 양궁의 임동현(18·충북체고3)과 이성진(19·여·전북도청)이 그들.
운동선수들이 ‘헝그리 정신’으로 없던 힘을 낸다는 것은 옛말이다. 더군다나 싫은 건 죽어도 안 한다는 요즘 10대들은 어떻게 고된 훈련을 견딜까. 이들을 만나보았다.
○ 완벽을 위하여
10대 올림픽 전사들은 대부분 완벽주의자들이다. 남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기준을 어떻게 달성하느냐가 이들의 과제다.
중2 때인 2000년 학교 특별활동시간에 재미로 사격을 시작한 안수경은 시드니 올림픽에서 강초현이 메달을 따는 것을 보고 “나도 사격으로 2004년 올림픽에 나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올림픽은 아무나 나가는 게 아니니까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의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그는 3년가량 거의 매일 새벽 4시 반에 사격장에서 하루를 시작해왔다. 단체 훈련이 끝나고도 혼자 남아 연습하다가 고교 선배들에게 “네가 뭐 올림픽에 나갈 거냐. 튀는 짓 하지마라”는 경고를 들은 적도 여러 번이다.
안수경은 “훈련은 자기만족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라서 힘들 게 전혀 없다”고 한다. 가장 힘든 것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가 도달하고 싶은 만큼의 기록이 나와 주지 않을 때”다.
천민호가 공기소총으로 쏴야 하는 10점 만점의 과녁은 지름 0.5cm에 불과하다. 게다가 60발을 1시간동안 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 세계대회에서도 600점 만점이 나오기 어려운데 4월 대표팀 4차 선발전 본선에서 천민호는 600점 만점을 받았다. 그는 “뜻대로 안 되면 걱정이 되고 잡념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누가 빨리 자신을 컨트롤해 거기서 빠져나오느냐의 차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이가 어리지만 남들 1시간 연습할 때 나는 2시간씩 하면서 이 자리에 왔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반면 이성진은 스파르타식 훈련을 거친 경우. 고교 1, 2학년 내리 하루에 화살을 천발씩 쏘는 강훈련을 받았다. 밥 먹는 시간을 빼고 오전 8시부터 밤 12시까지 계속 활을 쐈고 손가락 끝에 물집이 잡히면 실을 꿴 바늘을 끼워 물을 빼고 다시 쏘는 훈련을 반복했다. 이를 통해 팔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기계적으로 움직여지도록 감각을 단련시켰다. 이성진은 “중학교 때는 너무 많이 맞아 운동을 그만두려고도 했는데 고교 때 했던 천발 쏘기가 지금 나의 밑바탕이 된 것 같다”고 한다.
○ 두려움 없는 전진
사격과 양궁은 유독 10대가 강한 분야다. 남자 양궁팀의 서거원 감독은 그 이유를 “화살 하나에 지나친 기대를 걸지 않기 때문”이라고 바라봤다. “올림픽의 심리적 압박감은 엄청나다.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경험 많은 선수들이 되레 마음 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0대들은 무모할 정도로 과감하게 덤비므로 경기력이 좋다”는 것.
임동현의 무기도 과감성이다. 6발을 쏘는데 4분이 주어지지만 그는 평균 1분30초 이내에 6발을 모두 쏜다.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빨리 활용하는 것”이 그의 장점이다.
이성진도 “실수하지 않을까 생각하면 반드시 실수한다”고 한다. 다른 선수에 비해 활을 쏘는 슈팅 타임이 빠른 것이 그의 장기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빨리 쏘는 것이 내 나름대로는 집중하는 방식”이다.
황경선은 도망가는 상대를 따라잡아 얼굴을 차는, 공격적인 앞발상단기술이 특기다. 태권도 국가대표팀 김세혁 감독은 황경선에 대해 “전광석화로 치고 빠지는 찬스 포착력이 좋다”고 평가했다. “상대를 끌어내는 경기나 노련미가 뛰어난 경기가 아니라 정석 실력으로 기본 지키기를 잘하니까 상대의 속이는 전략에 잘 안 넘어간다”는 것.
황경선은 “대전 중엔 선수끼리 말을 못하게 되어 있지만 그래도 심리전이 있다”고 한다. 눈싸움으로 기선을 제압하려 들거나 득점을 했을 때 요란한 득점 시위와 함께 상대를 바라보고 웃으며 기를 죽이려는 선수들도 있다. 황경선은 그런 심리전에 말려들어간 기억이 거의 없다. 내성적인 성격의 그는 “시합 뛰다가 눈이 마주치면 이상하다”고 할 정도로 상대의 눈을 보지 않고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 움직임의 방향을 보여주는 상대의 어깨, 몸통에 온 신경을 집중할 뿐이다.
○ “땀은 거짓말 안해요”
임동현이 말하는 양궁의 매력은 게임과 비슷하다. 토너먼트 경기를 하면 1등과 64등이 겨루는데 유럽에선 꼴찌가 1등을 잡지 못하지만 한국에서는 실력 차이가 크지 않아 꼴찌가 1등을 잡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꼴찌가 1등을 이길 수도 있어서, 방심할 수도 없지만 졌다고 끝장도 아닌 것”이 양궁의 매력이다.
그는 “오른손에서 화살이 떠날 때 이게 10점짜리인지 9점짜리인지를 직감하게 되는데 그 순간의 스릴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해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온 양궁을 자신의 전문직이라고 생각한다.
황경선은 언니 황경애 (한체대)와 ‘태권자매’다. 언니를 따라 6살 때 태권도를 시작했고 초등학교 4학년때 경기도 시합에 나갔는데 얼떨결에 3등을 하면서 선수생활이 시작됐다. “그냥 논다고 생각하면서 했는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1년에 10cm넘게 키가 자라 174cm가 됐고, 감히 덤비지도 못하던 언니를 슬슬 이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남들보다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안수경은 자신의 오른손 감각이 남들보다 발달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미술 선생님한테 ‘그림을 그리지 왜 사격을 하느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는 “열심히 한다고 다 성적이 잘 나오면 재미가 없겠지만 기록이 누가 잘 나올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겨루는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운동을 잘 하려면 높은 교육을 받을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아 전교 1,2등을 다투는 우등생이다. 어릴 때부터 디즈니 만화영화를 보며 혼자 공부한 영어회화 실력도 수준급. 유학도 가고 IOC 위원도 되고 싶다는 포부가 다부지다.
어린 선수들의 꿈은 한결 같았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 황경선은 자면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꿈을 꾼 적이 부지기수고 안수경은 2000년부터 “나는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예정자”라고 굳게 믿는 마인드 컨트롤을 해왔다. 목표에 근접했으니 이제 다음은 뭘까? 이성진이 “그 후엔 새 희망을 찾아야죠”하면서 다부지게 입술을 앙다문다.
글=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