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민의 야한여자-당찬여자]‘피아노 걸’ 노영심

  • 입력 2004년 6월 10일 16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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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심은 지금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 근처 어느 오지에 있다. 그곳에서 ‘노영심의 이야기 피아노 11주년 음악회’를 열 참이다. 관객을 찾아 떠난 그의 연주회는 얼음 속의 천년여왕을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 영화에서 노영심의 음악을 자주 접하게 된다. 올해 들어 ‘그녀를 믿지 마세요’와 ‘아홉살 인생’의 음악을 맡았다. 영화감독인 한지승씨를 남편으로 둔 까닭일지도 모른다. 나는 영화음악 작업이 그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소녀적인 감성이 이야기가 있는 영화음악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또 다른 그의 재능을 느끼게 한다. 특히 ‘아홉살 인생’에서 들려주는 그의 음악은 자신을 많이 닮았다. 그가 좋아하는 감성에, 과거에 자신을 실었기 때문이다.

노영심은 그래서 닥종이 인형을 닮았다. 닥종이 인형은 과거형의 동사를 느끼게 한다. 자신을 ‘피아노 걸’이라고 부르는 노영심에게서 나는 언제나 과거를 느낀다. 어느새 어른이 돼버려 순수했던 시간을 그리워하는 한 소녀의 연민과 아쉬움. 그게 그의 모습이다.

때로는 피아노를 사랑하는 소녀의 모습이 아닌 피아노에 집착하는 피터팬 증후군의 여인으로 보일 때도 있긴 하지만 노영심은 정말 피아노를 사랑하는 여자다.

타좌(打坐)라는 말이 있다. 지관타좌(只管打坐)의 줄임말로, ‘다만 앉아 있을 뿐’이라는 뜻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많은 수행자들이 좌선(坐禪)을 한다. 즉 앉아서 깨달음을 찾는다는 뜻이다. 물론 그저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팔만사천의 번뇌를 이겨내야 하고, 끊임없이 몰려오는 세상의 잡념들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육체적 고통 속에서 피할 수 없는 인내심의 시험을 견뎌내야 한다.

언젠가 동승(童僧)의 작가 원성스님이 그린 타좌라는 작품을 본 적이 있다. 단정하게 좌선삼매에 빠진 동승의 모습을 아련하게 담고 있다. 가녀린 동승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동승의 모습에서 수행자의 길에 들어선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노영심,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타좌의 경지를 느낄 때가 있다. 여섯 살에 시작한 피아노는 서른여섯을 넘긴 그의 곁에서 30년을 넘게 애증의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아니다. 과거 음악에 대한 자신의 해석으로 평가받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와 달리 소위 뉴에이지라는, 고전음악의 난해함과 대중음악의 기계음을 탈피한 자연의 소리에 가까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노영심, 그 또한 다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예술세계의 차별성에 대한 고민을 한다. 이러한 강박관념이 그를 이벤트에 집착하게 한다. 대중의 이해와 감동을 돕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치밀하게 계산된 행사들이 가끔씩 불필요한 사족(蛇足)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는 또 사과나무를 닮았다. 그것도 빨간 홍옥이 달리는 사과나무. 그에게는 보호받고 싶은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자기 안에서 고향을 찾고, 이 세상이 아늑한 집이 되도록 형상화한다.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는다. 자기 내면으로 집중할 수 있게 해서 자신을 삶의 중심으로 이해시킨다. 그로 인해 자신의 역량을 더 잘 펼칠 수 있는 사람이다. 자기중심의 그늘을 가진 사과나무다.

노영심은 즐겁다. 2002 월드컵 당시 노영심 한지승 부부와 함께 축구경기를 본 적이 있다. 광주에서 있었던 스페인과의 8강전이다. 머리에 빨간 두건을 쓰고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모습에서 가슴속에 유쾌함을 간직한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명랑함이 느껴졌다. 그러한 밝음이 사람들을 곁으로 모이게 한다.

노영심. 변덕스럽고, 명랑하며, 사랑과 연민을 향한 열정으로 넘치고 가끔씩 이기적이다. 세포 하나를 어린아이로 키워 낼 줄 아는 에너지가 있다. 또 가수이고 연주자이며, 작곡가이고, 방송진행자이며 영화음악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음악이라는 재능이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결혼 후 보이는 그의 안정된 모습이 보기 좋다. 가정은 모든 에너지의 원천이다. 아마도 정열이 마음대로 분출될 수 있는, 확장이 허용될 수 있는 공간에 살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엔리오 모리코네 같은 거장의 숨결로 보니와 클라이드의 일탈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노영심을 기대해본다.

보석디자이너 패션 칼럼니스트 button@ke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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