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피 인디언들은 시험을 볼 때 다른 이의 답안지를 보거나 자기 것을 보여주거나 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백인 교사의 말에 수긍할 수 없었다.
“우리 조상들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의논해서 가장 좋은 길을 찾으라고 하셨소. 시험이야말로 우리에겐 어려운 일 중에서도 대표라고 할 만하오. 그래서 한데 모여 최선의 답을 찾으려 하는데 이를 못하게 하다니요. 그런 지시는 부당하오.”
오늘 소개할 ‘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에 나오는 짤막한 일화다.
1980년대 후반쯤 고등학교를 다닌 이들은 이 책을 보며 추억에 잠길지도 모르겠다. 여기 실린 글들은 그 당시 청소년잡지였던 ‘우리시대’에 연재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피 말리는 성적 경쟁에 시달리던 그 시절 청소년들에게 윤구병 교수의 글은 강요된 잣대에서 벗어나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일깨우던 고급 에세이였다.
그러나 이 책을 지금 학생들에게 권하는 데는 적잖은 고민이 따랐다.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영화도 사극(史劇)같이 멀게 느끼는 세대에게 십수년 전의 글들이 과연 감동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나의 고민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학교 교육은 구조적으로 세상일을 옳고 그른 것, 선하고 악한 것, 우월하고 열등한 것으로 나누어 보게끔 하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경쟁이 아닌 상생의 눈으로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가르쳐 준다.
저자는 ‘괴짜’ 철학교수와 딸 나래, 그리고 ‘소외계층’ 친구인 민주가 서로 주고받는 편지글의 형식으로, 남과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편안한 입말로 풀어낸다.
“…획일은 통일이 아니야…통일은 서로 다른 것들이 따뜻하게 주고받으면서 조화롭게 하나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여럿이 없으면 통일도 없는 거지. 획일은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통일은 다른 것을 다른 것으로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달라.”
‘지도상의 직선이 현실에서도 가장 빠른 길은 아니며 지름길은 걷는 사람의 나이, 건강 상태 등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라는 요지의 글에선 가난과 열등함이 삶의 장애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조건으로 자랑스럽게 거듭난다.
사실 이 책의 글들은 발표될 당시만 해도 급진적이란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별 거부감 없이 읽힌다. 그만큼 상생과 조화, 관용과 사랑은 우리 사회에서도 더디지만 조금씩 뿌리내려 가고 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학교도서관 총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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