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장관 ‘변심’ 배경 촉각속 “한국영화 보루 반드시 사수”

  • 입력 2004년 6월 13일 18시 43분


11일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밝히자 영화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1000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실미도’를 보기 위해 극장에 관객들이 몰린 모습.-동아일보 자료사진
11일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밝히자 영화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1000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실미도’를 보기 위해 극장에 관객들이 몰린 모습.-동아일보 자료사진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11일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 제도)의 축소를 검토할 시점”이라고 기존의 스크린쿼터 고수에서 입장을 선회함에 따라 영화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날 이 장관을 면담한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16일 오후 비상회의를 열어 입장을 정리키로 했다.

문화부는 스크린쿼터 축소의 근거로 60%를 웃도는 시장 점유율과 ‘올드보이’의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 등 한국영화의 질적 양적 성장을 꼽고 있다. 스크린쿼터가 한미투자협정(BIT)의 걸림돌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온 경제부처와 수년간 갈등을 겪어온 문화부가 이번에 발을 뺌으로써 정부 부처간 입장 조율이 끝난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스크린쿼터는 1966년 한국영화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 영화진흥법의 시행령에 ‘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가 146일(40%)로 규정돼 있지만 각종 경감 조치로 106일이 통용되고 있다. 미국은 이를 73일(20%)로 줄이라고 요구해오고 있다.

문화부는 11일 스크린쿼터 축소와 더불어 △한국영화의 위축 신호가 나올 때 쿼터를 회복하는 연동제 도입 △재정지원 등 쿼터 이외의 종합적 지원방안 마련 △비상업적 영화를 포함한 새로운 쿼터의 신설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영화계는 스크린쿼터 축소 자체에 강력 반발하는 한편 이 장관과 현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불신마저 드러내고 있다. 대책위의 양기환 사무처장은 “스크린쿼터의 의미를 잘 아는 이 장관의 입장 변화가 충격적”이라며 “앞으로 영화인들의 의견을 모아나가겠지만 스크린쿼터 축소가 논의되던 지난해와 상황이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영화인회의’ 이춘연 이사장도 “(입장 변화의) 사정이야 있겠지만 대통령과 장관을 믿었던 만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생각이 든다”며 “토론할 일이 있으면 토론하겠지만 스크린쿼터 사수라는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영화 ‘실미도’로 국내 영화로는 최초로 관객 1000만 명을 기록한 강우석 감독은 “1000만 영화의 탄생과 한국영화의 높은 시장점유율을 스크린쿼터 축소의 근거라고 내세우지만, 1000만 영화의 탄생은 일종의 돌연변이”라며 “한국영화의 자생력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화인들은 문화부의 입장이 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총선 이후 교체가 기정사실화된 이 장관이 직접 스크린쿼터 축소를 밝힌 대목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이 장관이 물러나면서 ‘총대’를 메고 스크린쿼터 축소를 발표함으로써 대통령과 차기 장관의 부담을 덜어주는 한편, 그 대신 영화계를 위해서도 스크린쿼터 연동제와 다양한 지원을 담은 대안을 제시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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