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인 정마리씨(30·사진)가 부른 민요가락에, 한 이불을 덮고 막 잠자리에 들려고 했던 엄마와 아빠와 아들이 모두 일어나 흥겹게 춤을 춘다. 엄마 아빠는 정신장애인이고 소아암을 앓는 열두 살짜리 아들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수술을 앞두고 있다. 곧 깨어질 행복이기에 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과 흥겨움은 더욱 슬프게 다가왔고 빛바랜 사진처럼 영원히 정지된 모습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요즘 서울 대학로 동숭무대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손기호 작·연출)가 끝나면 관객들은 대부분 2∼3분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한다. 극장 문을 나와서도 한동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관객이 많다. 구수한 경주 사투리와 수채화 같은 시골마을의 일상에 푹 빠져 웃음 짓다 보면 어느덧 아버지에 대한 진한 그리움으로 가슴 한구석이 젖어들기 때문이다.
자칫 어둡게 흘러갈 수 있는 이 연극에 따스한 분위기를 더해 주는 것은 정씨가 들려주는 토속민요. 정씨는 잊혀져 가는 우리 민요를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話者)’ 역할을 한다.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한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30호 여창가곡 전수자이기도 하다. 연극 무대는 물론 안은미씨의 춤 공연, ‘복수는 나의 것’ ‘YMCA야구단’의 영화음악 제작에도 활발히 참여해 왔다.
정씨는 순진하고 수다스러운 엄마 김부뜰, 어눌하지만 속 깊은 아빠 이출식, 아빠가 농약을 마실까봐 농약을 숨겨두는 아들 선호 등 가족을 테마로 개사한 민요를 장마다 부른다. 특히 막걸리를 손가락으로 찍어먹고, 슬리퍼로 머리를 긁고, 리코더를 부는 등 가족의 특징을 본 뜬 그의 행동은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는 “시골에서 할머니들이 부르는 구수한 민요에서 풍부한 삶의 이야기를 따왔다”고 말했다. 7월 4일까지. 02-762-9190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