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글 둘을 잘 요리해 새로운 맛의 그림책을 선사하는 안데르센상 수상자 앤서니 브라운의 최신작. 초현실적인 장치나 기발한 상황의 연속인 그림이 담담한 글과 씨줄과 날줄처럼 짜여져 책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2001년과 2002년 영국 런던의 테이트미술관에서 아이들과 교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워크숍을 토대로 가족이야기를 엮었다. 그래서 테이트미술관이 배경이 됐고 거기에 전시된 그림들이 소재가 됐다.
책 속의 가족은 미술관 구경이 처음이다. 나와 형은 엄마를 따라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보고 생각나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맘껏 상상해 본다.
우리의 미술관 나들이도 이 정도라면 해볼 만할 것 같다. 브라운은 예술작품 앞에서 당황하거나 주눅 들지 말라고 얘기 하는 것 같다. 그림에 나를 맞추려 하지 말고 그림을 내게 맞추라고 제안한다.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상상하며 다른 관람객과 그것을 나누는 것, 이것이 미술관 나들이의 비결이다.
그러나 브라운이 이를 위해 이 책을 내놓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미 ‘미술관에 간 윌리’를 통해 즐거운 그림보기를 가르쳐 주지 않았는가.
그의 많은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바로 가족의 의미다. 집안일을 혼자 떠맡고 혹사당하다 집을 나가버린 엄마(‘돼지책’), 늘 바쁘다는 핑계를 대는 아빠와 관심을 받지 못해 외로워하는 아이(‘고릴라’), 함께 나들이를 갔지만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아무도 즐겁지 않은 가족(‘동물원’)….
이 책 속의 가족도 처음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나와 형은 엄마 아빠와 함께 동물원에 가는 ‘동물원’과 비슷한 가족이다.
‘동물원’에서 나와 형은 지루해지고 배가 고파지고 싸우고 아빠의 끔찍한 농담을 들어야만 했다. 고릴라 앞에서 마침내 엄마가 말한다.
“그들은 내게 누군가를 생각나게 만들어. 누군지 생각할 수는 없지만.”
이 책 ‘행복한 미술관’에서도 아빠는 누구도 웃어주지 않는 농담을 늘어놓고 엄마는 ‘어느 가족이 그려진 그림’(오거스터스 에그의 ‘과거와 현재 1’) 앞에서 묻는다.
“이거 보니까 우리가 아는 누구네 집이 생각나지 않니?”
그러나 브라운은 ‘동물원’에서와는 다른 결말을 준비한다. 무미건조하고 삭막했던 가족이 함께 그림을 보면서 소통의 길을 찾도록 해준 것이다. 그래서 미술관에서 돌아오는 가족의 모습은 미술관으로 가는 길의 가족과 전혀 다르다. 다정하고 생기발랄한 기운이 넘친다.
이 책의 원제인 ‘The Shape Game’이란 그림놀이도 재미있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엄마가 가르쳐준 이 게임을 하는데 한 사람이 모양을 그리면 다른 사람이 그 모양 위에 다시 그림을 그려 완성하는 식이다. 어떤 그림이 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읽어 내려 노력하게 하는 이 게임으로 가족들은 따뜻함과 화목함을 찾게 된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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