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개성만두 빚기 70년 임명숙할머니

  • 입력 2004년 6월 20일 18시 27분


임명숙 할머니는 요즘도 만두를 손수 빚는다. 그의 손맛만 같았어도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불량만두 파동 같은 것은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강병기기자
임명숙 할머니는 요즘도 만두를 손수 빚는다. 그의 손맛만 같았어도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불량만두 파동 같은 것은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강병기기자
아흔을 바라보는 임명숙(林명淑·87) 할머니는 평생을 만두와 더불어 살아 왔다. 열세 살 때 친정어머니에게서 만두 빚는 법을 배웠으니 70년이 넘는 인연이다.

고향 개성에서 어머니를 도와 만두집을 했던 그는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 서울에 온 뒤 한동안 밖으로 솜씨 자랑을 하지 않았다. 만두는 집에서 즐겨 만들어 먹는, 인기 있는 가족음식일 뿐이었다.

임 할머니를 부추긴 것은 자식들이었다. “우리 어머니 만두가 최고”라고 말하는 데 용기를 내 영등포에서 20년 이상, 그리고 인사동 경인미술관 앞으로 장소를 옮겨 7년째 개성만두전문점 ‘궁’을 운영 중이다.

얇은 만두피에 김치 쇠고기 돼지고기 두부 숙주 부추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큼지막하게 빚어낸 개성만두의 개운한 맛이 소문나면서 단골손님이 늘어 갔다. 개성 지방에서 먹는 조랭이 떡국도 별미로 인기를 끌었다. 내국인은 물론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왔는데 주한미군 장군 등은 이곳 만두집에서 정기적으로 회식을 갖기도 했다는 것.

다른 사람 같으면 기력이 쇠할 법도 하건만 임 할머니는 요즘도 식당에 나와 하루에 많게는 700∼800개씩 만두를 빚는다. 창가에 마련된 ‘고정석’에서 만두를 정성껏 빚는 할머니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다가 식당에 들어서는 손님도 적지 않다. 간혹 가게에 나오지 않으면 “몸이 불편하신 것 아니냐”고 손님들이 걱정스럽게 안부를 물어 오곤 한다.

아들 신상덕(申相德·66)씨는 “어머니가 나보다 밥을 더 많이 드실 정도로 건강하다”며 흐뭇해 했다.

임 할머니는 최근 TV에서 봐서는 안 될 것을 목격했다. 이른바 ‘불량 만두’ 사건이다. 임 할머니는 “음식은 그렇게 만들면 안 된다”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안 된다’를 되뇌었다.

아들 신씨는 이번 사건의 경위와 진상이 하루빨리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손님 앞에 내놓는 음식에는 무엇보다 정성이 담겨야 한다는 원칙만 지키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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