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첫머리의 ‘프롬나드’에서부터 그가 만들어내는 울림은 믿음직하다. 능숙한 상인은 대충 집어도 항상 똑같은 무게를 담아내는 법. 박종훈의 꿋꿋하게 울리는 왼손은 바로 그런 느낌을 안겨준다. 왼손 저음이 침착하게 작품 줄기를 잡아주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느리지 않은 연주인데도 천천히 기웃거리며 ‘전람회’를 샅샅이 구경하는 느낌을 준다.
‘바바야가의 오두막’ 등 빠른 부분일수록 오히려 침착함이 돋보이며, 마지막 곡 ‘키에프의 큰 문’에서 종소리의 묘사 부분은 진짜 종소리처럼 들려온다. 터치(打鍵)에 적당히 힘이 실려있고, 손가락 사이의 음량배분도 섬세하게 설계돼 있다. 힘 좋고 튼튼한 연주로 유명한 라자르 베르만이 그의 스승이었다는 점이 어색하지 않다.
‘전람회의 그림’ 외에 별도로 실린 무소르그스키의 소품 다섯 곡은 더욱 매력적이다. 잔잔한 서정과 내면의 불길이 섞인 작품으로, 얼핏 들어 러시아와는 멀리 떨어진 프랑스의 동시대 작곡가 포레의 소품을 듣는 듯한 느낌도 든다. 세 번째 곡으로 실린 ‘명상’에는 바흐의 작품과 같은 대위법(對位法)의 편린이 섞여있어 더욱 흥미롭다.
박종훈은 열다섯살 때 서울시향과 대곡 중의 대곡인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2000년 이탈리아 산레모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스톰프뮤직 발매. ★★★★ (별 5개 만점)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