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푸드]마이 웰빙/우베 슈멜터 독일문화원장

  • 입력 2004년 6월 24일 17시 04분


요리사 차림으로 평창동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슈멜터 원장.사진제공 푸드 앤 레스토랑
요리사 차림으로 평창동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슈멜터 원장.사진제공 푸드 앤 레스토랑
1999년 8월 말. 우베 슈멜터 독일문화원장(59)은 당시 덴마크 코펜하겐의 독일문화원장이었다. 그가 한국의 독일문화원장으로 다음 달 부임한다는 기사가 한 신문에 났다. 기사를 본 당시 주덴마크 한국 대사는 슈멜터 원장 부부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식사 자리에서 대사는 슈멜터 원장에게 한국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슈멜터 원장은 크고 좋은 주방이 있는 집을 얻어 요리를 마음껏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놀란 표정의 대사는 한국에서는 남자가 요리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되도록 주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했다.

한국에 부임한 지 5년. 슈멜터 원장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집을 찾는 사람들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그를 거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됐다. 그는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의 조리담당 박효남 상무와는 요리를 통해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그에게서 요리에 대한 철학과 애정을 들었다.

○ 요리는 창조

그가 태어난 1945년, 독일은 폐허였다. 그날그날 먹을 음식을 구할 수 있다는 것만도 행운이었다. 슈멜터 원장은 “음식은 매우 귀중한 것이니 항상 존경하라”는 말을 들으며 컸다.

그는 여덟살 무렵부터 음악가인 아버지를 따라 유럽 여러 곳을 다니며 외국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다. 열두살 무렵 오스트리아로 휴가를 갔을 때였다. 호텔 근처 호수에서 낚시를 해 물고기 서너 마리를 낚은 그는 호텔 주방으로 달려갔다. “조리도구를 빌려 주세요. 내가 요리하고 싶어요.” 주방의 요리사들은 모두 웃었지만 끝내 그는 생선요리를 만들었다.

20대 중반 서독 본 대학의 최연소 교수였던 그는 자신의 제자인 중국인 학생들과 요리클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중국요리를 배우고 같이 만들어 먹었다.

슈멜터 원장은 “요리는 무(無) 또는 아주 적은 재료에서 아주 훌륭한 것을 창조해 내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한 나라의 대표 음식이 과거 그 나라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인 경우가 많은 것에서 잘 나타난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대표적 전통요리인 피주아다는 옛 노예들이 농장주에게서 매주 금요일에 받던 돼지의 발, 귀, 꼬리와 쌀, 소시지, 마냑(뿌리식물의 일종)가루 등을 넣어 만든 것이다. 독일 북부의 어부들이 먹던 청어요리는 이제 고급호텔 레스토랑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됐다.

그는 한국음식이야말로 무에서 창조한 완벽한 예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거의 먹지 않는 것들을 가지고 우아하고 완벽한 맛이 나게 발전시킨 것이 바로 한국음식입니다. 사소한 예이지만 깻잎이 그렇고 메주가 그렇지요.”

○ 요리의 매력

그는 요리의 즐거움을 세 단계로 나눈다. 첫 번째는 무엇을 만들어 먹을까 생각한 뒤 그에 맞는 소재를 선정하고 사들이는 일이다. 특히 한국의 다양한 채소는 아주 매력적이어서 시장에 가서 신선한 채소를 사는 것은 즐거움 그 이상이다.

두 번째는 요리한 음식을 즐기는 것이다. 비올라 연주자이자 지휘자이기도 한 슈멜터 원장은 요리를 지휘에 비유한다. 100여명에 달하는 전문 연주자들의 기량을 한데 모아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만드는 것은 다양한 재료를 모아 ‘새로운 산물’을 만들어 내는 희열과 통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요리로 다른 사람의 혀와 몸과 마음까지 쾌락에 빠뜨리는 즐거움이다.

슈멜터 원장은 이런 즐거움을 어디서건 맛보길 즐긴다. 집을 찾는 손님들에게만이 아니다. 매년 두 차례 한국에 있는 독일 기업가들을 상대로 한 한독상공회의소 주최의 만찬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것은 언제나 그다. 아예 차림새도 주방장 복장이다.

몇 년 전 북한의 독일대사관으로 문화행사를 진행하러 갔을 때도 요리를 했다. 북한 사람들에게 독일 요리를 보여 주겠다며 대사관의 주방에 들어서자 일하던 북한 여성들은 멈칫거렸다. 그는 이틀 동안 약 60명의 사람들에게 렌틸 콩과 보리, 훈제 돼지고기와 삼겹살 등을 넣은 독일식 수프를 끓여 대접했다.

“아주 감동적인 맛이었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 요리의 진정성

1972년 그는 처음으로 아시아에 왔다. 싱가포르에 일이 있어 가게 된 것. 비록 중국은 아니지만 진짜 중국요리에 가까운 요리를 먹게 됐다는 생각에 떨리기까지 했다. 밤늦게 도착해 자정이 가까워 올 무렵 호텔을 나와 택시를 타고는 무조건 중국음식점으로 가자고 했다.

택시는 어두운 거리를 지나 좁은 골목의 한 허름한 문 앞에 섰다. 문을 두드리자 중국인 가족이 나왔다. 가족은 즉시 골목 앞에 탁자와 의자를 펼치고 주방에 불을 지핀 뒤 갖은 음식을 내왔다. 생선, 게, 돼지고기, 닭고기, 수프. 말이 통하지 않아 뭘 주문할지도 몰랐지만 그 중국인 가족은 정성껏 요리를 내왔다.

슈멜터 원장은 정말 행복했다. 만드는 사람의 솔직함과 먹는 사람의 순수한 열망, 그리고 음식을 먹는 순간의 분위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바로 요리의 진정성(authenticity)을 느꼈다는 것이다.

“먹는 행위는 단순히 먹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건 그저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지요.”

굶주림이라는 단순한 감각에서 출발하는 요리는 진정성을 드러내는 이벤트라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성은 요리의 재료나 눈에 보기 좋게 꾸미는 외양에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볼까요. 당신이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한 농가에 삽니다. 밭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잘 구운 빵과 피코리노 치즈 한 조각, 레드와인 한 병, 싱싱한 올리브를 식탁에 놓습니다. 잘 드는 나이프로 빵을 잘라 그 위에 치즈를 얹어 한 입 베어 뭅니다. 포도주 한 잔을 들이켜고는 올리브를 입에 넣습니다. 창밖에는 해질녘 노을이 붉게 물들죠. 그게 행복입니다.”

그는 그것이 이른바 웰빙의 기본일 것이라고 넌지시 말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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