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교실][문학예술]‘책 읽는 소리’…다독아닌 정독

  • 입력 2004년 6월 25일 17시 29분


◇책 읽는 소리/256쪽 9000원 마음산책

추사 김정희의 집 기둥에는 ‘반일정좌 반일독서(半日靜坐 半日讀書)’라는 말이 씌어져 있다고 한다. 하루의 절반은 고요히 앉아 자신과 만나고, 그 나머지 반은 책을 읽으며 옛 성현을 만난다는 뜻이다.

반면 요즘 학생들은 쉼 없이 읽고 또 읽는다. 지하철에서 나눠주는 무가지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참고서로 일과를 보내다가 인터넷을 보며 잠든다. 이토록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지만 과연 지금 아이들이 우리 조상보다 더 현명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지식이 많아질수록 성숙하기는커녕 공허하고 더 산만해질 뿐이다.

이 점에서 정민 교수의 ‘책 읽는 소리’는 울림이 큰 책이다. 그는 선현들이 남긴 옛글을 통해 반성 없는 우리네 삶에 대해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독서란 원래 마음 수양의 한 방편이다. 옛 조상들은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단다. ‘옛 사람의 성스러운 기운이 목구멍과 입술에 젖어들어 글을 쓸 때 옛 사람의 기운이 절로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같은 내용을 백 번, 천 번씩 읽었다. 김득신 같은 이는 만 번 이하로 읽은 책은 아예 자기의 독서 기록에 올리지도 않았을 정도다.

‘지식 경쟁력’을 우선하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사람들은 간서치(看書痴), 즉 책만 읽는 바보로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저자 정민 교수는 훈장같이 낭랑한 목소리로 이들을 통해 지식의 수집보다는 자신을 가다듬는 지혜를 넓혀가는 것으로서의 참된 독서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옛글에 얽힌 선인들의 삶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인쇄술이 변변찮던 시절, 어렵사리 친정에 온 딸을 위해 온 가족이 모여 소설책을 베껴 주었단다. 사촌동생, 조카가 매달렸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자 아버지까지 나선다. 그렇게 만들어진 필사본 남은 여백에 아버지는 사연을 단다.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 마냥 무뚝뚝해 보였던 사대부의, 딸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잔잔하게 느껴진다.

책을 읽는 옛 사람들의 풍취도 아름답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질한다. 집안을 물 뿌리며 비질하고 아침 해가 비쳐 들면 향로를 비로소 피운다. 책상을 정돈하고 책을 펼쳐 되풀이해서 읽고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옛 사람이 마음을 쏟은 곳을 엿보기라도 하면 이 가운데 즐거움이 있다. 말로 형용하기는 어렵고 가만히 혼자일 뿐이다.’

권장도서와 의무독서에 시달리는 요즘 아이들이 과연 옛 사람의 그윽하게 책 읽는 정취를 느낄 수 있을까? 부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학교 도서관 총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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