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시사회를 본 박쥐 영웅 ‘배트맨’이 후배 돌연변이인 스파이더맨에게 편지를 보냈다.》
난 미처 몰랐네. 스파이더맨 거미줄의 의미를. 자네는 슈퍼맨처럼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날아다니며 젠 체하는 영웅인 줄로만 알았거든. 하지만 자네는 범죄 소탕하느라 피자를 제 시간에 배달하지 못해 실직하고 방세 독촉에 시달리더군. 그런 일상의 무게에 눌릴 때마다 거미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땅에 곤두박질치는 자네는 ‘중력의 노예’였던 거야.
셀프 세탁소에서 거미 옷을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가 빨간 물이 배어나와 속옷을 망치는 모습은, 백만장자로서 이중적 삶을 즐기면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신분에 맞는 도덕적 의무)를 실현하기 위해 하인이 준비한 첨단 방탄복을 입고 활약하는 나의 이중적 삶과 비교해 보니 무척 안쓰럽더군. 정의 구현과 비루한 현실의 삶 사이에서 좀스럽게 머뭇거리는 자네의 하류인생을 보니 자네는 슈퍼맨 같은 슈퍼히어로와 달리, 나보다 더 어두운 ‘반영웅(anti-hero)’이라는 생각이 들었네.
자네나 나나 복면 덕에 먹고 살지 않나. 그래서 정체성 고민에도 빠지고. 그런데 이번에 자네 얼굴은 시민들에게도, 애인인 메리 제인에게도, 적인 닥터 옥토퍼스에게도 너무 무기력하게 들통 나더군. 의아했네. 복면이 벗겨지는 드라마틱한 순간을 이 영화가 왜 영악하게 써먹지 않는지 말이야. 이윽고 무릎을 쳤네. 핵심은 다른 지점에 있었던 거야. 자네가 천신만고 끝에 구해낸 시민들은 마스크가 찢긴 채 기진맥진한 자네 맨얼굴을 보고 말하지. “그냥 보통 아이네?” 바로 그거야. 그냥 ‘보통 아이(Kid)’. 목숨 걸고 정의를 지키면서도 ‘벌레’라는 핀잔이나 듣던 자네가 정체성 고민의 지긋지긋한 터널에서 헤어 나오는 과정, 이것이 영화가 말하려 했던 것이야!
불만도 있네. 악당인 닥터 옥토퍼스는 원시적이고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지만, 1편의 고블린에 비해 자기 분열과 고민의 깊이가 얇아졌더군. 나와 대결을 벌였던 조커와 펭귄맨, 니그마, 미스터 프리즈를 기억하나? 그들은 비록 저주받았지만 안타까운 사연과 파괴적인 가학성 사이에서 끝없이 착란을 일으키지. 악당은 힘이 아니라 카리스마로 먹고 사는 거야.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있네. 자네의 사랑 메리 제인은 왠지 매력이 부족한 듯하지 않나? 얼굴을 거꾸로 맞대고 하는 ‘거꾸로 키스’ 실력은 여전히 발군이었지만…. 나와 위험한 사랑을 나눴던 여기자 베일(킴 베이싱어), 캣우먼(미셸 파이퍼), 메리디언 박사(니콜 키드먼), 포이즌 아이비(우마 서먼)에 비하면 어딘지 좀 떨어지는 것 같단 말이야. 아마 자네는 말하겠지.
왜소하고 돈 없는 소시민 피터로선 이웃집의 메리 제인이야말로 자신이 꿈꿀 수 있는 최상의 여인이라고. 이게 ‘스파이더맨2’가 내세우는 현실의 깊이라고…. 그럼 건투를 비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줄거리▼
주인공 피터(토비 맥과이어·사진)는 정의를 지키는 영웅적 삶과 먹고 사는데 바쁜 일상생활 사이에서 갈등한다. 스파이더맨으로 남느냐, 평범한 소시민으로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과의 사랑을 이루느냐를 두고 고민한다. 한편 핵물리학자 옥타비우스(알프레드 몰리나)는 사고로 인해 기계 촉수를 문어발처럼 휘두르는 ‘닥터 옥토퍼스’로 변해 뉴욕을 유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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