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이면 음악팬들은 불평을 터뜨린다. 7월엔 주요 공연장들이 일제히 긴 방학에 들어가기 때문.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과 호암아트홀은 4∼16일 무대 점검을 위한 휴관에 들어가며 LG아트센터는 7월 한 달간 문을 닫는다.
공연전문가들은 “음악문화 선진국에서도 도시인들이 휴가를 떠나는 여름은 ‘시즌 오프’ 기간으로 꼽힌다. 그렇지만 볼 만한 공연은 어디선가 계속 이어진다”고 말한다. 휴가지에서 다양한 공연이 열리기 때문이다.
● 산으로… 유적지로…
미국 유럽 등에서 공연 하한기(夏閑期)가 없는 이유는 연주자들이 관객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세계 음악의 수도’로 꼽히는 오스트리아 빈의 경우 7, 8월에는 빈 악우(樂友)협회 황금홀, 조피엔잘 등 대표적 공연장에서 교향악 콘서트가 자취를 감춘다. 그 대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명승지인 잘츠부르크로 자리를 옮겨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에서 오페라 반주를 펼친다.
미국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7, 8월 인근 산악지대인 탱글우드에서 열리는 ‘탱글우드 음악축제’에 출연한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인근 라비니아에서 ‘라비니아 음악축제’에 참여한다. 이처럼 자국 내의 관광지와 명승지로 잠시 공연장소를 옮겨갈 뿐 ‘음악이 없는 계절’이란 상상할 수 없다.
● 휴가지 문화축제 ‘걸음마’
최근 국내에서도 휴가지 음악행사의 싹이 움트고 있다. 제주시는 96년부터 7월에 국내외 관악 연주자들을 초청해 ‘제주 국제 관악제’를 열어 왔다. 올해도 8월 12∼20일 제주도문예회관과 한라아트홀 등에서 행사를 갖는다. 기원오페라단은 2002년부터 강원 평창군 용전면 ‘메밀꽃오페라학교’를 비롯해 평창군 일대에서 공연과 오페라 체험교실, 오페라 워크숍 등을 곁들인 ‘평창 오페라 축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공연기획사 ‘문화뱅크’는 2002년부터 7월이면 전국 해수욕장을 찾아다니며 유명 성악가가 참여하는 ‘해변 음악회’를 열고 있다.
무엇보다 이 같은 문화축제의 분기점이 될 만한 ‘사건’은 24일부터 용평리조트 내 공연장을 중심으로 강원 대관령 일대에서 열리는 제1회 대관령 국제음악제.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첼리스트 지안 왕,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펠츠만 등 세계적인 대가들이 참여해 공연과 마스터클래스 등을 펼친다. 그러나 공연장이 최대 700석 규모에 불과해 아쉬움을 남긴다.
● 휴가개념이 다르다?
공연계 인사들은 “우리나라에서도 ‘휴가지 공연관람’ 문화가 자리 잡으려면 휴가에 대한 개념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종일 바쁘게 돌아다니고 밤이면 술이나 화투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등한시했던 마음의 여유를 찾는 선진형 여가문화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
유럽의 경우 휴양지에서도 사람들은 클래식음악 연주회를 즐겨 찾는다. 그 덕분에 독일의 휴양도시 바덴바덴에서 출발한 ‘바덴바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17년의 유구한 역사로 유럽 정상급 관현악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휴양지에서 움직임은 적게, 여유는 많게’라는 독일인들의 여가개념이 거둔 성과다.
강규형 한국여가문화학회 이사(명지대 교수)는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소모적인 휴가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이를 위해 휴가지 문화축제를 육성하는 한편 ‘여가활용 교육’을 초중고교 예술교육 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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