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가 요즘 산을 타는 방법은 옛날과 사뭇 다르다.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조바심치며 바삐 걸음을 옮기지 않는다. 대신 동행한 어린 아들 기범(11)이 온 산이 떠나가도록 웃고 떠들며 산을 오르는 속도에 걸음을 맞춘다. 그러다 정상에 못 오르면…. 중간에 내려와도 상관없다.
“예전에는 등산을 했다면 지금은 입산(入山)을 하죠. 등산할 땐 안 보이던 산의 모습이 지금은 더 잘 보입니다.”
남씨가 최근 펴낸 에세이 ‘낮은 산이 낫다’(학고재)는 등산에서 입산으로 그의 삶이 변화해온 궤적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여성 산악인들끼리의 에베레스트 등반 계획 좌절, 잠적, 결혼, 출산, 서울을 벗어나 지리산으로 이사, 이혼, 강원 정선자연학교 교장, 태풍 루사로 인한 자연학교 풍비박산, 다시 지리산 화개골에 정착…. 생활인으로서 삶의 굽이굽이를 숨가쁘게 돌아오며 그는 “삽시간에 생명을 앗아가는 강가푸르나의 돌풍보다 강원 정선의 살림집 지붕을 날린 루사의 바람이 더 무서울 수 있다”는 삶의 깊이를 깨달았다.
“이십대에는 ‘죽음의 대리 선택’으로 산을 올랐어요. 채워지지 않는 기갈이 있었고 남들보다 우월하고 싶은 성취욕에 쫓겼습니다. 그게 내게도 남에게도 상처를 주었죠.”
이제 그는 산을 오르는 대신 산자락에 살며 찻잎을 덖어내고, 된장을 만든다. 지난해에는 콩 열 가마니로 메주를 빚었다. 산악인으로서 ‘언젠가는 백두대간의 북녘을 완주해야 한다’는 숙제를 잊지 않고 있지만, 지금 그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마루에 앉아 지리산의 넉넉한 품을 바라볼 때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자연과 아이다. 씨앗 넣고 풀 두 번 매준 것이 전부여도, 콩은 잘 자라주었다. ‘애인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아들은 비가 오면 까치와 잠자리 집이 무사할까 걱정하는, 자연과 대화하는 아이로 자라났다. 한 해를 시작하는 날과 두 사람의 생일날 남씨와 아이는 맞절을 한다. 맞절의식을 치를 때마다 남씨는 ‘아이가 있어서 나를 돌아보게 되고 하심(下心)을 배운다’는 사실을 되새긴다.
“지금까지의 삶이 산으로 오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특별히 원하는 것 없이 평안한 상태. 그게 지금의 제 삶이고, 저는 이 평안이 참 좋습니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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