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근대의 대립은 지금도 논란의 여지가 많은, 고루하면서도 새로운 문제다. 그러나 유럽을 제외한 지역에서의 ‘근대’란 유럽에서 들어온 것이라는 점에는 대개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좀 거칠기는 하지만 아시아에서의 ‘근대’란 한 마디로 서구적 근대와 토착적 전통의 각축의 역사라고 정리할 수 있다.
무의식 속에 전승돼 오던 것이 명확한 의도하에 ‘전통적인 것’으로 탈바꿈해 가는 것은 ‘근대’라는 외적 충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식인들이 무의식적 전승을 국민적 민족적 ‘전통’으로 데뷔시킬 때는 거의 대부분 서구적 근대의 몸짓을 쫓아가고 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카모토 히로코의 ‘중국 민족주의의 신화’는 우리를 이런 문제에 깊이 빠져들게 하는 아주 자극적인 책이다. 부제에서 밝히고 있듯이 사카모토는 ‘인종·신체·젠더’라는 관점에서 20세기 전반 민국기(民國期) 중국의 사상과 사회 상황을 풀어 간다. 그중 가장 예리하면서도 상세하게 분석을 한 곳은 ‘전족(纏足)’을 논한 3장이다.
중국의 상류사회에서는 여성들의 작은 발을 극단적으로 선호했다. 그 때문에 여자들은 서너 살 때부터 엄지발가락 외의 모든 발가락을 발바닥 쪽으로 접어서 굽힌 뒤 천으로 꽁꽁 옥죄는 아주 작은 신발을 신어야 했다. 일곱여덟 살이 되면 발등의 뼈를 탈구시켜 발 자체를 하이힐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런 ‘전족’의 풍습은 지금 보면 기이하기 짝이 없다. 이것은 민국기의 지식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전족’은 여타의 봉건적인 풍습과 마찬가지로 부정해야 할 악습일 뿐이었다. 초창기 중국의 지식인들은 근대 서구의 안경을 쓴 채 중국의 전통을 일방적으로 단죄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전족’을 서구적 근대에 대항한 한족(漢族) 내셔널리즘의 표명으로 해석하려는 최근의 시도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전족’ 폐지 운동이 일어나자 여성들이 앞장서서 반대했다. ‘전족’에는 남성들의 성적 시선이 강하게 꽂혀 있었고 여성들은 남성들의 이런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족을 받아들인 여성들이 자신의 주체성을 몽땅 상실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그녀들은 전족 신발에 멋진 자수를 놓는 등 패션을 성립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남성 지식인들의 전족 비판에는 여성을 ‘건전한 어머니’로 국민화하려는 경향이 농후했고 ‘방족(放足)’이 관례화되자 전족을 했던 여성들은 심한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전족은 신발을 벗으면 즉시 낫는다’고 호언장담했던 남성 지식인들은 전족을 했던 여성들이 신발을 벗었을 때 얼마나 심한 신체적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를 상상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여성의 신체는 일찍이 ‘민족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근대 이후에는 ‘근대화의 장소’로 식민지화됐다.
이연숙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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