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상형문자 전성시대

  • 입력 2004년 7월 5일 18시 46분


디지털시대 새로운 상형문자시대가 열리면서 고대의 기호와 상징이 부활하고 있다. 기원전 2000년 우크라이나와 중국으로부터 트로이, 그리스, 아제르바이젠, 그리스, 이란은 물론 북아메리카 인디언 문명(4)까지 다양한 형태의 卍자 문양이 발견된다. 의미는 불, 태양, 동서남북 등으로 쓰였다.-사진제공 푸른역사
디지털시대 새로운 상형문자시대가 열리면서 고대의 기호와 상징이 부활하고 있다. 기원전 2000년 우크라이나와 중국으로부터 트로이, 그리스, 아제르바이젠, 그리스, 이란은 물론 북아메리카 인디언 문명(4)까지 다양한 형태의 卍자 문양이 발견된다. 의미는 불, 태양, 동서남북 등으로 쓰였다.-사진제공 푸른역사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상형문자 시대가 도래하는가.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전통적 문자보다는 그림형태의 메시지를 선호하는 문화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 신 상형시대 개막의 신호탄, 윈도의 탄생

컴퓨터 운영체제가 문자 중심의 도스에서 아이콘(icon) 중심의 윈도로 바뀐 것은 ‘새로운 상형문자 시대’의 신호탄이었다.

성상(聖像)이란 뜻의 아이콘은 도스의 문자명령어를 대신하는 그림기호. 이어 PC통신과 호출기를 통해 확산된 이모티콘(emoticon)은 아이콘 문화 확산의 기폭제가 됐다. 처음엔 웃는 얼굴이 많다고 해서 스마일리(smiley)라고도 불렸던 이모티콘은 문자와 특수기호 등을 결합해 발신자의 감정상태를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휴대전화는 이모티콘을 더욱 확산시켰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매우 복잡한 형태의 이모티콘도 엄지손가락으로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엄지 족’이 탄생했다. 이모티콘은 일대일 채팅이 가능한 MSN 메신저가 탄생하면서 아예 정형화된 캐릭터로 내장됐다.

사이버공간 상의 분신을 뜻하는 아바타(avata)는 이런 그림 중심의 사고가 육신을 얻게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아바타는 ‘지상에 강림한 신의 화신’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아바타라(avataara)'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터넷게임과 채팅 등에서 이용자를 대신하는 인간 아이콘이다. 아바타는 익명성을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꿈꾸는 ‘다른 나’라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 고대 상형문자가 현대 아이콘으로 부활하기도

이런 그림기호와 도상(圖像)에 대한 관심은 전통적 문자매체인 출판에서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서구 기독교문화 속에 숨쉬는 각종 기호와 도상의 수수께끼를 추적하는 내용의 소설 ‘다빈치 코드’(베텔스만)는 최근 국내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했다. 이 소설은 고대 기독교의 각종 기호와 미술작품의 도상에 담긴 미묘한 의미의 차이를 집중 소개한다. 예를 들어 세로가 더 긴 십자가는 예수가 처형된 십자가로 ‘고문하다’라는 뜻에서 나왔지만, 가로 세로의 길이가 똑같은 십자가는 그보다 1500년 전에 등장한 것으로 ‘평화’와 남녀의 합일을 상징한다는 것. 지난달 번역 출간된 책 ‘세계의 모든 문양’(푸른 역사)은 십자가, 오각성과 육각성, 卍자 등 각종 문양의 고대 기원을 추적하고 있다.

고대의 기호가 현재에 부활한 사례도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고대 중국 윈난(雲南)성 소수민족인 나시(納西)족이 사용한 ‘동파(東巴) 상형문자’가 젊은이들 사이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채팅 아이콘으로 유행이다.

기호학자들은 이 같은 형상(形象) 중심의 사유체계가 출현한 것은 감각성과 즉각성이 강조되는 디지털 매체환경의 영향이라고 진단한다. 또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의 기의(記意·의미)를 대신할 만큼 논리성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기표(記標·기호)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 다른 생각을 부각시키려는 사회심리적 요소도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신항식 한국광고기호학회 회장(홍익대 광고홍보대학원 교수)은 “기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기표의 확산은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최근 기호학 관련 저술이 늘어나는 것은 이런 형상 중심의 사유를 내실화하려는 시도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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