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이 깊어진다는 것은 마음을 비워간다는 뜻일까. 그는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 ‘나의 시에게·3’에서 ‘너를 수술대 위에 뉘이고/해부도를 들이대는 짓거리들/더는 하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이전에 발표했던 ‘나의 시에게’ 1, 2편에서 시를 늘 곁에 두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면, 이번에는 ‘해으스름에야/처음으로 편안해지는/나의 시여’라는 말로 한결 여유로워진 내면을 드러낸다.
그는 밖을 향한 큰 목소리 대신 내면으로 눈을 돌린 나직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동시대의 연대(連帶)도 중요하지만 선대와 후대를 이어주는 연대도 있는 겁니다. 세상을 살다간 이와 살고 있는 이,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이의 마음 한 끝을 이어주는 것도 소중하지요.”
시인을 만난 곳은 그의 서울 효창동 2층집. 이곳은 조각상들로 가득했다. 작고한 남편(조각가 김세중씨)의 작품들이다. 매년 6월 남편의 기일에 맞춰 추모전을 열어온 그는 지난달 18번째 추모전을 마쳤다.
그에게 시간을 뛰어넘어 가장 소중한 가치는 종교다. 그의 작품세계의 뚜렷한 특징이기도 한 ‘종교와 사랑’은 이번 시집에도 짙게 배어 있다. 또 이 시집에서는 서정주 시인 생전에 그의 병실을 찾아 ‘시인 선집’에 수록될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일화(‘큰 시인’) 등도 엿볼 수 있다.
“대녀(代女)는 몇이나 두셨느냐”는 질문에 그는 “문단에 허영자 김후란 강은교가 있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성심여고 3학년 때 학교 강당에서 영세를 받았는데 그때 내가 대모(代母)를 섰다”고 말했다.
시를 쓰며 살아온 반세기. 그 시간을 시인은 ‘하세월 완공의 기약 없는’ 집짓기에 빗대어 노래한다.
‘…혼신으로 벽돌을 굽고 구워도/한사코 숯이어라/한사코 사금파리여라/시인은 준열히 자책하며/그 허무를 운다/문학일래 참담하였다고/시인은 생애의 고백을 남긴다/아울러 문학일래 기쁨 있었다고.’ (‘문학사’)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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