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숭이 공연
오후 3시. 공연이 시작됐다.
1부 예절교육시간. 연두색 원피스를 입은 3세 원숭이 ‘사월이’가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사월이는 ‘인사!’라는 조련사의 구령에 따라 머리가 발에 닿도록 거듭 꾸벅 인사를 한다. 어찌나 깍듯이 인사를 하는지 귀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2부 체육시간. ‘바람’ ‘번개’ 등 5마리의 원숭이들이 점프, 링 통과하기, 물구나무 서기, 윗몸 일으키기, 장대발 걷기, 응급구조 활동 등을 선보인다. 원숭이들은 자기 키 높이의 세 배 이상을 거뜬히 점프한다.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3부 수업시간. 벽에는 ‘원숭이답게 살자’는 급훈과 수업 시간표가 걸려 있다. 10마리의 원숭이가 각각의 책걸상에 자리를 잡자, 교장인 정비원씨가 등장한다. 반장 ‘쓰요시’는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린다.
원숭이 학생들은 ‘2+3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오른쪽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든다. 학생 중 실질적 보스인 ‘조달호’는 ‘1만-9990’, ‘5+5’,‘100-90’ 등 세 가지 고난도 질문에 양 손가락을 모두 펴 들어 10이라는 답을 맞힌다. 그러나 질문은 5나 10이 나오는 것밖에 없다.
정씨는 원숭이 학생들의 진로 상담도 하고, 주변이 산만하거나 복장이 불량한 학생을 지적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교실 청소도 한다.
○ 칭찬의 힘
1989년 복싱 은퇴 이후 이벤트 사업 등을 하던 정씨는 1999년 어느 날 일본 원숭이학교 관련 TV 프로그램을 본 뒤 무작정 일본으로 갔다.
삼고초려 끝에 만난 그곳의 일본인 교장은 “3개월 동안 원숭이 울타리 안에서 잠자고 식사하며 원숭이들과 지내보라”고 했다. 정씨는 이 과정을 거친 이후 매년 10여차례 일본을 왕래하며 어깨 너머로 조련 기술을 익혔다. 수백번 반복해 공연을 봐도 매번 새로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사업 노하우를 통 알려주지 않는 교장도 결국에는 마음의 문을 열었다. 2002년 원숭이 100마리를 내주며 정씨의 사업 파트너를 자청했다.
정씨의 조련 테크닉 핵심은 ‘칭찬’이다. 원숭이에게 기초 점프 기술을 가르치는 과정을 보자. 조련용 막대기를 원숭이 눈높이에 대면 습성상 뭐든지 잡는 원숭이는 막대기 높이까지 뛰어오른다. 이때 원숭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따뜻하게 안아 준다. 높이 오를 때마다 원숭이가 좋아하는 땅콩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당근’일 뿐이다. 주된 보상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이다.
“아이가 처음 걸음마할 때를 떠올려 보세요. 갈채로 아이의 성공을 환영해 주잖아요. 잘못한 일을 나무라기보다 잘한 일을 칭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칭찬 받는 것, 사랑 받는 것은 지능지수(IQ) 50인 원숭이도 압니다. 신뢰는 만들어가는 겁니다.”
○ 커뮤니케이션 기술
원숭이는 서열 체계가 뚜렷한 무리 생활을 하며, 시간 개념이 철저하다. 정씨의 관찰에 따르면 원숭이들은 30종 이상의 의사소통 방식을 갖고 있다.
식사 시간이 됐을 때 먹이를 안 주면 질책하듯 ‘꽥꽥’ 소리를 낸다. 오랜만에 아는 얼굴을 만나면 ‘끽끽’대는데, 신기하게도 반가운 느낌이 전해져 온다. 낯선 사람과 대하면 째지는 듯한 금속성 소리로 공포감을 드러낸다.
정씨가 원숭이로부터 배우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감각의 다채로운 활용이다. 원숭이는 눈의 접촉을 통해 조련사의 감정을 잘 읽어내기 때문에 조련사들은 원숭이가 꾀를 부릴 때 눈에 힘을 가득 줘 카리스마를 전달한다. 사람보다 후각이 발달돼 수업시간 제자리도 냄새로 찾아간다.
“사람들은 오감 중 시각과 청각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요. 원숭이들은 후각뿐 아니라 서로의 털을 가지런히 해 주는 ‘털고르기’를 통해 촉각으로 관계를 맺기도 하죠.”
정씨는 늘 조련사들에게 ‘원숭이 눈높이에 맞춰 교감하라’고 강조한다. 사람 눈높이에서 조련하다보면 감정이 섞인 체벌이나 욕설을 할 수도 있다. 동물 조련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용기를 주는 것과 과정을 지켜보는 인내이다.
복서에서 원숭이학교 교장으로 변신한 정씨의 논리 정연한 설명을 듣다 보니, 훗날 그가 인간관계 컨설턴트로 변신해도 꽤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숭이는 사람보다는 정직한 것 같아요. 배신은 안 하거든요. 그래도 조련하면 할수록 어렵네요.”
부안=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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