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식
우리가 세상을 낳는 거다 그리하여
찢어지고 갈라내는 아픔으로
일생은 살아가는 거다
살아서 가는 거다
사내들, 땅 위의 건달들
드잡이질로 반백을 후딱 해치우고 있을 때
다리 하나 내어밀고 막혀버린 송치와 함께
끝내 서서 버티는 에미소도
이 땅에는 끈질기게 있어야 하는 거다
우리 함께 여자로 태어나 있기는 하지만
빈 들판으로 발 디디려니
고통은 무한한 곳으로 간다
의지가지 없어도 그것이
우리가 대신하는 바보 같은 기쁨이려니
일생은 살아서 가야 하는 것이려니.
- 시집 ‘아흐레 민박집’(창작과비평사) 중에서
어머니, 편지글 잘 받아보았습니다. 모서(母書-‘어머니가 씀’)란 본디 글 뒤에 붙이는 말인데 꾹꾹 연필에 침 발라 굵게 제목으로 다신 뜻도 잘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있고 세상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막혀 버린 송치와 함께 끝내 서서 버티는 에미소’ 이야기도 실감났고요, 평생 마른 땅 한 번 밟아보지 못한 어머니 무른 발도 선연히 눈에 밟혔습니다. 허나 어머니의 저 편지글이 다만 자궁과 산도를 지닌 여자만의 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모성(母性)엔 성이 없는 걸 오늘에야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수컷들도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낳을 수 있다는 걸 알겠습니다. 어머니, 나는 준비된 세상에 온 게 아니라, 세상을 낳으러 온 것이지요.
반칠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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