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폼생폼사 와인문화/토종 와인의 야심찬 도전

  • 입력 2004년 7월 15일 16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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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토종 와인 ‘샤또 마니’를 보관중인 충북 영동군 마니산의 한 토굴. 상온 12도, 습도 80%가 1년내내 유지되는 천연 저장고다. 지재만기자 jikija@donga.com
한국 토종 와인 ‘샤또 마니’를 보관중인 충북 영동군 마니산의 한 토굴. 상온 12도, 습도 80%가 1년내내 유지되는 천연 저장고다. 지재만기자 jikija@donga.com

한국 농업계가 토종 브랜드 와인으로 국내 와인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식용 포도, 산머루, 감, 매실 등 우리 땅에서 자란 농산물을 가공해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는 것. 1977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마주앙이 자체 양조된 이후 전국 곳곳에 수십 개의 와이너리가 만들어졌다. 지난해 국내 시장 점유율은 약 2%. 과연 국내 와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 국산 와인들

충북 영동군의 국산 와인 ‘샤또 마니’는 지난해 2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에서 주로 재배되는 식용포도인 캠벨 얼리와 머스캣을 혼합해 우리 입맛에 맞는 와인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95년부터 와인을 개발해 왔다는 윤병태 대표는 “홍보를 세련되게 하고 유통망만 제대로 확보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연간 70만병을 생산할 수 있는 라인과 와인을 저장할 수 있는 유럽식 토굴을 확보해 놓았다.

역시 캠벨 얼리로 와인 제조에 성공한 경기 안성시 대부동 그린영농조합의 ‘그랑꼬또’도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온다. 김지원 대표는 “연간 2만5000병을 생산해 군납업체 등에 납품하고 나면 소매시장에 내놓을 물량이 없을 정도”라고 설명한다. 내년엔 연산 20만병 규모로 공장을 늘릴 계획이다.

그는 “토종 와인은 장기간 소장용이 아니라 즉시 마시기 위한 것”이라며 “3, 4년간 보관이 가능한 ‘젊은’ 수입 와인들과 비교할 때 가격대비 품질에서 손색이 없다”고 주장했다. 라벨을 가리고 유명 와인 동호회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결과 맛이 독특하고 좋다는 평가를 얻었다.

이 외에도 토종 작물을 이용한 새로운 와인을 개발한 상품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경북 청도군에서는 이 지역 대표 작물인 감을 재료로 화이트 와인 ‘감그린’을 만들었다. 5월 시장에 내놓았는데 세련된 디자인과 맛으로 반응이 좋은 편이다. 현재 연산 6000병인 생산라인을 내년엔 2만5000병으로 늘릴 계획이다.

전북 임실군에서는 산머루를 이용한 와인을 출시했다. 지난해 8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해는 15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내년엔 달래로 만든 화이트 와인을 선보일 계획이다. 주변 농가들은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지금은 300가구 가운데 100여가구가 사업에 동참할 정도로 호응이 뜨겁다.

○ 비관론

일부 와이너리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국내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국산 와인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한마디로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격’이라는 것이다.

우선 토양, 기후 등 자연 환경의 총합을 일컫는 ‘테루아’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와인 칼럼니스트 이상황씨는 “식용이 아닌 양조용 포도가 잘 자라려면 일정한 온도와 일조량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여름 장마와 겨울 혹한기가 있는 한국에서는 어렵다”고 설명한다. 식용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서는 맛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설사 제조 기법을 따라할 수 있더라도 수백, 수천년 전통의 깊이는 어쩔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와인 칼럼니스트 김혁씨는 “이름을 외국 와인 비슷하게 짓거나 맛을 흉내 낸 와인은 세계시장은 물론이고 국내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없다”며 “지금처럼 조급하게 서두를 것이 아니라 앞으로 10년에 걸쳐 300억원 가량을 투자하겠다고 생각해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국산 와인은 아직 가격 경쟁력도 갖추고 있지 않다. 대개 2만∼3만원대인 국내 와인 가격은 시장에서 별로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것. 아직 국내 와인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태이기에 더욱 그렇다. 김혁씨는 “만약 애국심에만 호소해 판다면 장기적으로는 더욱 발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국산 와인이 살 길

‘술 만드는 박사’로 유명한 고려대 박원목 교수(생명공학과)는 스스로 경기 이천시에 연구실을 마련해 연간 1t이 넘는 술을 제조한다. 6년째 토종 와인 개발에 여념이 없는 그는 “국산 포도로 담근 포도주가 외국 제품에 비해 노화방지 기능을 가진 폴리페놀 성분이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농가가 저마다 아이디어를 내고 기술력을 축적할 수 있도록 와인 제조 허가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또 “장기적으로 한국도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포도주를 등급별로 인정해주는 품질인증제도를 마련해 국내 와인 시장의 체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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