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세계의 비경]<10>백두산 천지-서쪽코스

  • 입력 2004년 7월 15일 16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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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서파(西坡. 서쪽 기슭)의 천지 바로 밑 산기슭 산악도로는 청석봉 아래의 천지 계단까지 이어진다. 푸른 소관목지대 뒤로 하얗게 보이는 부분이 부석과 잔설로 뒤덮인 분화구 외벽이다. 지린=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백두산 서파(西坡. 서쪽 기슭)의 천지 바로 밑 산기슭 산악도로는 청석봉 아래의 천지 계단까지 이어진다. 푸른 소관목지대 뒤로 하얗게 보이는 부분이 부석과 잔설로 뒤덮인 분화구 외벽이다. 지린=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보랏빛 붓꽃은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을 만큼 은근히 화려한 천연미인을 닮았고 한데 무리지어 피는 샛노란 금매화는 열네 살 소녀 같은 발랄함이 인상적이다. 또 하늘 향해 큰 꽃잎을 나팔처럼 펼친 노란빛 큰원추리는 귀부인 닮은 우아한 풍모로 한눈에 꽃의 귀족임을 알 수 있고 키 작아 낮게 깔리듯 피어나는 연보랏빛 구름국화는 내 어머니처럼 늘

몸을 낮추며 다른 사람 말에 귀 기울이는 신중함이 엿보인다.

주식회사 태평양이 지원하고 ‘들꽃박사’ 김태정 소장(한국야생화연구소)이 이끈 백두산 들꽃탐사(6월 28일∼7월 5일) 현장을 소개한다.》

하늘 향해 옴팡진 발톱을 웅크린 듯 고개 숙인 하늘매발톱은 앙탈하는 애첩 같은 귀여움이 신선하게 다가오고 7월에도 잔설 허다한 분화구 외벽을 뒤덮듯 피는 연한 미색의 노랑만병초는 처녀아이 귀밑머리처럼 무심결에 손대게 하는 충동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탐스러운 미색의 풍만한 꽃송이를 불쑥 치켜든 두메양귀비는 그 이름 그대로 당태종 홀린 양귀비처럼 산에 끌려 꽃에 취해 훠이훠이 산을 오르는 나 같이 몽매한 이의 시선을 단박에 휘어잡고도 남을, 요염함과 청순함을 두루 갖춘 고산의 요정이다.

천지가 훤히 올려다 뵈는 천지 서쪽 아래 해발 1600m의 고산화원의 평원. 백화난만(百花瀾漫)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꽃 대궐을 이룬 곳인데 예서부터 천지를 오르며 눈에 띄는 들꽃마다 이런저런 말로 이렇게 옷을 입힌다.

예 오면 늘 보는 꽃이련만 그래도 그 표현은 매년 사뭇 다르다. 나 역시 나이를 먹고 꽃 역시 해를 거듭하니 보는 이나 뵈는 이나 변하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 자연지상정일 듯도 하다. 그러나 그래도 변치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어느 해 거름 없이 이맘때면 늘 새 꽃 피워내는 백두산이고 그 산 지켜주는 이 하늘이 아닌가.

7월의 백두산은 그야말로 들꽃 천지다. 한해는 자루모양의 박새가 서쪽 산기슭을 온통 뒤덮더니 올해는 고산화원의 들판을 하얀 바늘모양 꽃잎이 특색인 바위칼꿩의 다리가 뒤덮고 있었다. 그 하얀 꽃이 구름처럼 무리지어 핀 사이사이로 노란빛 큰 원추리와 주황빛 날개하늘나리 등의 들꽃이 자리 잡은 풍경.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반면 왕지 입구의 숲 속은 온통 보랏빛 붓꽃세상이다.

한국야생화연구회와 함께 들꽃 답사에 나선 들꽃박사 김태정 한국야생화연구소장이 왕지 입구 숲 속에서 두 시간 동안 꼼짝도 않은 채 한 장소에서 꽃 촬영에 열중했다. 28차례나 백두산을 다녀간 김 소장이건만 그 역시 소문만 들었을 뿐 아직 예서 보지 못했던 꽃, 린네풀과 자주종덩굴을 이날 처음 본 것이다.

이렇듯 백두산 들꽃은 다양하기도 하고 많기도 하다. 금강폭포와 금강화원으로 가는 길에는 들꽃으로 뒤덮인 평원을 지나고 왕지로 가는 길에는 꽃을 밟을까 보아 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정도다.

그뿐일까. 천지로 오르는 분화구 기슭에서는 7월 잔설 곁에 피는 두메양귀비와 노랑만병초에 마음 빼앗기고 천지에 올라서는 청석봉 아래로 펼쳐지는 산정호수의 상큼한 풍경에 눈먼다.

그러나 백두산 들꽃여행길의 백미는 내려오는 길에 지나는 노호배의 들꽃길이다. 편안히 누운 호랑이의 등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구릉은 온통 꽃나무로 짠 양탄자 같다. 천지 부근 고산의 강한 비바람과 눈 등 혹독한 기후를 견디기 위해 땅바닥을 기듯 납작 엎드려 자라는 소(小)관목으로 뒤덮인 덕분이다.

여기에는 따로 길도 없으니 관목 숲을 지르 밟지 않을 도리가 없는데 등산화 바닥으로 전해 오는 느낌이 그리도 푹신할 수가 없다. 거기서 산자락 아래로 펼쳐지는 초록의 숲을 내려다보며 조선족 아줌마가 싸준 흰쌀밥 도시락을 아삭거림이 일품인 조선오이를 고추장에 듬뿍 찍어 반찬삼아 드는 노호배 능선 꽃밭에서의 점심식사. 호사도 이 정도면 ‘사치’급에 들지 않을까.

지린=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백두산 들꽃트레킹 패키지는 백두산 서쪽과 북쪽을 차례로 오르는 4박5일 일정. 108만원. 월드탑여행사 02-2282-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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