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었습니다.”
“‘맛있다, 맛없다’로 구별하지 마세요. 그러면 수박에 대한 욕망이 생깁니다. 수박맛이 어떻게 변하느냐를 느껴보세요.”
12일 충남 천안시 광덕면 만복계곡에 자리한 ‘호두마을’(www.vmcwv.org· 041-567-2841). 2000년에 세워진 이곳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보리수선원과 더불어 대표적인 위파사나 수행처로 꼽힌다. 위파사나는 부처가 고대 인도에서 직접 실천한 수행법으로 국내에는 1990년대 초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날은 13명의 수련생이 4박5일 일정으로 수련하고 있었다.
오후 1시 수행 참가자와 김열권 법사가 수박맛을 놓고 대화를 나눴다. 김 법사는 1990년 미얀마에서 위파사나 수행을 배워 한국인 최초로 계를 받았다.
“수박맛은 자신과 수박, 즉 주와 객의 상호작용으로 느낍니다. 수박맛은 처음에 달다가 맹맹해지고 나중엔 맛이 없어집니다. 이처럼 변화하는 것은 실체가 없습니다. 그 변화를 보는 마음도 실체가 없어요. 주객을 떠나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진짜 ‘나’입니다. 맛있다고만 느끼면 수박을 더 먹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맛없다고만 느끼면 먹기 싫다는 욕망이 생길 뿐입니다.”
수련생들은 오전 4시에 일어나 오후 9시까지 좌선 행선(行禪·걸으면서 참선하는 것) 순룬호흡(박스 참조) 등을 한다. 식사는 오전 6시와 오전 11시 두 번. 오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 불식(不食)을 실천한다. 오후 수행 중 자유롭게 법사와 만나 수행을 점검한다.
위파사나 수행에선 호흡에 대한 관찰이 기본이다. 호흡을 하면서 느껴지는 숨의 흐름, 배가 나오고 들어갈 때의 느낌 등을 관찰하는 것이다. 호흡은 24시간 하는 것이므로 이를 관찰하면 차츰 몸, 마음, 무의식으로 관찰 대상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법사는 위파사나 수행을 통해 집착과 번뇌를 없앨 수 있다고 강조한다.
“화내는 것을 볼까요? 화를 내는 나와 화를 내게 한 대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진짜 나’가 관찰합니다. ‘진짜 나’는 화내기 전에 왜 화를 내는지에 대해 알게 됩니다. 화를 내는 원인과 그 뒤의 결과를 보게 되면 화를 내기 힘들어지죠.”
위파사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10가지 번뇌를 없애는 과정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10가지 번뇌는 의심, 몸과 마음을 나로 착각하는 것, 화 성욕 같은 감각적 욕망, 천상(색계와 무색계)에 대한 욕망,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려는 욕망, 존재의 공허함, 인간의 근원적 무지 등이다.
이 수행에 참가한 김형준씨(동국대 불교학과 강사)는 “‘무엇이든 잘해야 한다’는 초조함이 사라지는 것 같다”며 “생사 해탈까진 몰라도 마음의 질병을 고치는 데는 효과적인 듯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한상희씨는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의식 하나만 남는 것 같다”며 “오래 앉아 있어도 다리가 저리거나 힘든 줄 모르겠다”고 말했다.
위파사나의 장점은 기본수행법을 익히면 일상생활에서 언제든지 수행할 수 있다는 것. 보고 듣고 말하고 걷고 앉아 있는 모든 활동이 수련의 대상인 것이다.
간화선을 위주로 하는 조계종에선 위파사나를 통해 깨달음을 얻기 어렵다고 한다는 말을 전하자 김 법사는 “깨닫고자 하는 것도 욕심이다. 수행은 결국 집착을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호두마을은 한달에 서너 차례 수련회를 갖는다. 23일∼8월 1일 미얀마의 큰스님 우 에인다키를 초청해 열흘간 집중 수련회를 갖는다.
천안=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순룬호흡법이란
○ 미얀마의 고승 순룬 사야도(Sunlun Sayadaw·1878∼1952)가 개발한 호흡법으로 호흡 간격이 매우 빠르다.
우선 숨을 들이마실 때 아랫배를 내민다. 숨을 ‘토’ 소리가 나도록 급격하게 내뱉으면서 배를 안으로 들이민다. 이를 20여 차례 반복하고 잠시 쉰 뒤 다시 한다. 이 과정에서 숨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과 배의 움직임을 자세히 느낀다. 이 호흡법은 잡념과 졸음을 막고 집중력을 키우기 위한 것으로 보통 1시간 동안 계속한다.
예비 단계 무드라 호흡법
①등 뒤로 깍지를 낀 뒤 속으로 여덟까지 세며 숨을 들이마신 뒤 숨을 참고 다시 여덟까지 센다.
②여덟을 세며 숨을 내뱉으면서 몸을 최대한 앞으로 숙인다. 숙인 상태에서 숨을 참고 다시 여덟을 센다.
○①,②의 과정을 여덟 번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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