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의 부활은 이제 뉴스가 아니다. 그를 냉혈의 간웅이 아니라 열혈영웅으로 재해석한 소위 조조학(曹操學) 서적이 1990년대 말부터 계속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천하경영’(문학과지성사) ‘인간 조조’(바다) ‘조조 삼국지’(리더스) ‘카리스마 리더 조조’(북폴리오) 등이다.
면경(面經)은 ‘얼굴에 대한 최고 경전’이란 뜻이다. 중국인인 저자는 전국시대 말기의 상인인 여불위, 청대 정치가 증국번, 19세기의 거상(巨商) 호설암과 함께 중국인의 4대 면경으로 조조를 꼽아 이 책을 내놓았다. 저자는 조조의 진면목을 중국 특유의 ‘찬쯔(面子)’ 철학으로 풀어낸다. 우리말로는 체면으로 풀이되는 이 말은 자신에 대한 존엄성, 더 나아가 자아의 존재가치를 뜻한다.
조조는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삼국지연의’를 보더라도 조조처럼 풍부한 표정을 지닌 인물은 없다. 그는 호기롭게 웃기도 하고, 엉엉 울기도 하고(울보로 알려진 유비보다 조조가 우는 장면이 더 많다!), 수염을 쥐어뜯기도 하고, 파르르 떨며 분노하기도 한다.
저자는 조조를 ‘얼굴 바꾸기의 일인자’로 평가한다. 그는 ‘끊임없이 변하는 인생살이에 지혜가 없다면 결국에는 난감한 낯빛이 되리라’는 말로 조조의 얼굴 바꾸기가 난세를 헤쳐가기 위한 눈부신 처세술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조조의 얼굴 바꾸기에는 일관성이 숨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가치(面子)를 중국 전체의 평화를 이룩하는 것에 둔 강렬한 자의식이다. 이를 위해 기회를 포착하면 누구보다 과감할 수 있었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는 매관매직을 일삼던 환관 집안 출신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포부를 위해 환관의 독재에 반대하며 가업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또 사회적 명성을 얻기 위해 젊은 명사들과 교유하는 한편 경험 많은 명사들에게서 평판을 끌어내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그는 ‘태평성대에는 훌륭한 신하가 되겠지만 난세에는 간사한 영웅이 될 것’이라는 인물평을 한 허소에게 자기를 소개한 교현이 죽자 무덤까지 찾아가 감사를 표했다.
그렇지만 일단 명성을 얻고 난 뒤에는 철저히 독자행보를 취했다. 최고 권력자인 동탁의 회유를 뿌리치고 가산을 털어 반(反)동탁의 깃발을 가장 먼저 올렸고, 새 천자를 옹립하자는 명문귀족 원소의 회유를 뿌리치고 헌제를 옹호했다. 동탁이 죽은 뒤 계륵 같은 존재가 된 헌제를 끼고 천하를 안정시킨다는 전략을 취하면서 스스로 천자가 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결국은 자신의 아들을 통해 한 황실을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웠다.
문무를 겸비했고, 군사적 성공으로 천하를 움켜쥐었고, 당대의 정치적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했다는 점에서 조조야말로 동양의 카이사르라 할 만하다. “차라리 내가 천하를 등질지언정 천하가 나를 등지게 하지 않으리라”했던 조조의 강렬한 자의식은 해적의 포로가 됐을 때 스스로 몸값을 두 배로 올렸던 카이사르의 자부심과 너무도 닮았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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