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소에 시인 신현림씨(43)는 요즘 유행하는 볼레로를 꽃무늬 원피스 위에 걸치고 나타났다. 색깔은 핑크. 높은 굽의 샌들을 신은 그의 엄지발톱에는 파란색 페디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시와 많이 닮았다. 솔직하다는 점에서도, 대담(혹은 과감)하다는 점에서도.
1996년 10만부 가까이 팔려나가며 베스트셀러가 됐던 그녀의 두 번째 시집 ‘세기말 블루스’에서 그녀는 시집에 실은 자신의 누드화와 함께 매스컴으로부터 ‘성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는 30대 독신 여성’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후 사진 에세이집, 미술 에세이집, 번역서 등을 잇달아 내는 등 분주히 지냈지만 정작 세 번째 시집은 8년이나 걸려서 펴냈다.
“두번째 시집의 성공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 다듬고 다듬어서 냈어요. 덕분에 작품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요.”
새 시집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솔직하다.
“이제 사랑의 시작인 줄 알았는데/벌써 수평선처럼 끝을 보이며 울렁거리네/내가 아는 인연은 전생의 원수끼리 만난/측은지심 운우지정인 듯싶네/이마저 사라지면/인연의 연을 끌어내려야 맞을 거네” (‘측은지심 운우지정’)
“아가야, 엄만 그리운 것이 많단다/군중, 사내 냄새, 여행, 따뜻한 돈…/사내, 사랑 있어도 없어도 골 아프고” (‘싱글 맘-술이 쏟아지는 샤워기처럼’)
“너는 따뜻한 물병 같아/깨질까 봐 조심조심 안고 가지/어미 품속에서 너는 웃지만/까만 네 눈 속에서 나는 울고/…/단순한 생활이 있기까지 얼마나 복잡한 일이 많았나/너마저 없었다면 나는 견딜 수 있었을까” (‘싱글 맘-술 마시고 간다’)
시집을 읽으면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요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절로 드러난다. “두 번째 장(章) ‘싱글 맘’에 수록된 시들은 대부분 제가 겪은 일들”이라고 그녀는 시원스레 말한다. 그녀는 오랜 별거 끝에 지난해 이혼한 뒤 혼자 수원에서 네 살 난 딸을 키우며 살고 있다.
“8년 전 ‘세기말 블루스’와 이번 시집의 가장 큰 차이는 그때는 제가 독신 여성이었고, 지금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 맘’이라는 거겠죠.”
그리고 그 차이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여자에게 독신은 홀로 광야에서 우는 일이고/결혼은 홀로 한 평짜리 감옥에서 우는 일이 아닐까” (‘그해, 네 마음의 겨울 자동차’)
2장 ‘싱글 맘’에 수록된 시를 제외한 나머지 시들은 이전의 두 시집에 비해 우울함의 채도만 더 짙어졌을 뿐 생생한 언어와 감수성은 비슷하다. 도시 속의 쓸쓸한 삶이라든가 고독한 육체와 욕망 등을 그렸다. “외롭지 않기 위해 외로워하고/아프지 않기 위해 아픈 사람들”(‘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을 어루만지는 애정 어린 시선도 여전하다.
그는 여전히 바쁘다.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그는 9월에 첫 사진전을 열 계획이다. 사진전에 맞춰 사진 에세이집도 출간한다. ‘어른을 위한 동화’도 쓰고, 딸에게도 읽어줄 수 있는 어린이 동화책도 내고 싶다고 했다.
그녀에게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사람이 그립다는 거”라고 했다.
그녀의 시가 그녀 스스로도 위로할 수 있기를….
“그리운 손길은/가랑비같이 다가오리/흐드러지게 장미가 필 땐/시드는 걸 생각지 않고/술 마실 때/취해 쓰러지는 걸 염려치 않고/사랑이 올 때/떠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리” (‘사랑이 올 때’)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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