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국수(國手) 조남철 9단(81)을 최근 서울 강남구 수서동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월간바둑’ 7월호에서 3년간 연재해오던 회고록을 끝냈다. 2001년 8월부터 시작한 이 회고록은 조 9단이 구술하고 한국기원 양형모 홍보팀장이 정리했다. 에피소드 중심의 자서전 ‘바둑에 살다’(1997년)가 출간된 적이 있지만 연대순으로 정리된 회고록은 처음이다.
“서울 성동구 홍익동에 있는 5층짜리 한국기원 건물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회장이 기증한 것인데 시설이나 위치가 한국바둑을 대표하는 곳으로는 미흡해 서울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근사한 건물을 하나 신축했으면 좋겠는데….”
그는 산소 공급 튜브를 코에 달고 있었다. 60년간의 흡연으로 인해 폐 기능이 떨어져 산소 공급 없이는 호흡이 곤란하다는 것. 무릎 관절도 안 좋아 외부 출입도 거의 못한다.
그러나 기억력은 생생했다. 인터뷰 내내 사람 이름과 장소와 시간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56년 창설된 국수전은 첫 신문기전으로 인기가 대단했지. 당시 바둑담당 권오철 기자는 기보 게재 여부에 따라 부수가 5만부 이상 차이난다고 했으니까.”
그는 지금 한국 바둑계가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것에 대해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다.
“1956년 대만으로 교류전을 하러 갔는데 현지 기자가 국내 바둑 인구를 질문했어. 당시는 10만명도 안 되던 때인데 20만명이라고 허풍을 쳤지. 속으론 10만명만 돼도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1000만명 이라고 하니 대단하지.”
그는 자신이 초대 국수였던 때와 지금 최정상급과의 실력을 비교하면 자신은 정선(定先·흑이 덤을 주지 않고 두는 것) 정도의 실력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4월 13일 제4회 LG배 세계기왕전 국내 예선에서 문명근 6단에게 패한 뒤 공식 대국에 참가하지 않고 있다. 조 9단의 통산 전적은 460승 486패 7무(승률 48%)로 통산 우승 30회, 준우승 14회를 기록했다.
그는 후배기사들에게 당부했다.
“프로 기사가 바둑만 잘 둬선 안돼. 인간의 기본적 예법을 잘 지켜야 해. 바둑 공부만 하다가 자칫 소홀할 수 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잘 배워야 돼.”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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