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연재 끝낸 ‘영원한國手’ 조남철9단

  • 입력 2004년 7월 16일 18시 25분


조남철 9단이 산소공급장치를 코에 끼고 있다. 회고록을 정리한 양형모 한국기원 홍보팀장은 “조 9단이 3년전 연재를 시작할 때는 매일 담배 1갑을 피울 정도로 건강했지만 지금은 외출도 못하는 상태여서 안타깝다”고 말했다.-권주훈 기자
조남철 9단이 산소공급장치를 코에 끼고 있다. 회고록을 정리한 양형모 한국기원 홍보팀장은 “조 9단이 3년전 연재를 시작할 때는 매일 담배 1갑을 피울 정도로 건강했지만 지금은 외출도 못하는 상태여서 안타깝다”고 말했다.-권주훈 기자
“내 생애 마지막 소원은 새 한국기원 건물을 보는 거요.”

영원한 국수(國手) 조남철 9단(81)을 최근 서울 강남구 수서동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월간바둑’ 7월호에서 3년간 연재해오던 회고록을 끝냈다. 2001년 8월부터 시작한 이 회고록은 조 9단이 구술하고 한국기원 양형모 홍보팀장이 정리했다. 에피소드 중심의 자서전 ‘바둑에 살다’(1997년)가 출간된 적이 있지만 연대순으로 정리된 회고록은 처음이다.

“서울 성동구 홍익동에 있는 5층짜리 한국기원 건물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회장이 기증한 것인데 시설이나 위치가 한국바둑을 대표하는 곳으로는 미흡해 서울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근사한 건물을 하나 신축했으면 좋겠는데….”

그는 산소 공급 튜브를 코에 달고 있었다. 60년간의 흡연으로 인해 폐 기능이 떨어져 산소 공급 없이는 호흡이 곤란하다는 것. 무릎 관절도 안 좋아 외부 출입도 거의 못한다.

그러나 기억력은 생생했다. 인터뷰 내내 사람 이름과 장소와 시간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56년 창설된 국수전은 첫 신문기전으로 인기가 대단했지. 당시 바둑담당 권오철 기자는 기보 게재 여부에 따라 부수가 5만부 이상 차이난다고 했으니까.”

그는 지금 한국 바둑계가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것에 대해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다.

“1956년 대만으로 교류전을 하러 갔는데 현지 기자가 국내 바둑 인구를 질문했어. 당시는 10만명도 안 되던 때인데 20만명이라고 허풍을 쳤지. 속으론 10만명만 돼도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1000만명 이라고 하니 대단하지.”

그는 자신이 초대 국수였던 때와 지금 최정상급과의 실력을 비교하면 자신은 정선(定先·흑이 덤을 주지 않고 두는 것) 정도의 실력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 4월 13일 제4회 LG배 세계기왕전 국내 예선에서 문명근 6단에게 패한 뒤 공식 대국에 참가하지 않고 있다. 조 9단의 통산 전적은 460승 486패 7무(승률 48%)로 통산 우승 30회, 준우승 14회를 기록했다.

그는 후배기사들에게 당부했다.

“프로 기사가 바둑만 잘 둬선 안돼. 인간의 기본적 예법을 잘 지켜야 해. 바둑 공부만 하다가 자칫 소홀할 수 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잘 배워야 돼.”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