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는 대개 군사적 목적으로 제작되지만 그 안에 성곽, 도로, 봉화, 교량, 저수지, 산성, 사찰, 서원 등 사회경제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내용이 수록돼 동시대의 실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9장으로 된 이 필사본 지도는 청색, 적색, 노란색, 연두색, 검은색 등 여러 색으로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이 지도는 도성도(都城圖)와 팔도지도가 합쳐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도성도는 성곽 내부에 궁궐과 관청 등 주요 시설물들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지도 뒷면에는 도성 둘레와 인구수, 전답의 면적, 세금 납부액, 15세 이상의 양인과 공사천민(公私賤民)들로 편성된 지방군인 속오군(束伍軍)의 숫자, 전투용 배였던 전선(戰船)과 거북선의 숫자가 기록돼 있다. 한성부 도성의 둘레는 1만 4573보(步)라고 돼 있으니 약 11km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당시 한양의 인구는 남자 9만4074명, 여자 11만3173명이고 조선의 전체 인구는 759만 1275명(함경북도 제외)으로 집계돼 있다.
전선은 111척, 거북선은 5척, 속오군은 21만 3575명이라고 기록돼 있는데 당시 거북선은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사용했던 설계도가 전승되지 않아 개량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었다. 대포를 쏘는 구멍의 배치와 높이, 간격, 노 젓는 사람의 위치 등이 맞지 않기 때문에 보통 배와 다를 바가 없었다. 거북선은 조선말기까지 각 수군 병영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지도를 그린 사람은 “우리나라 지도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 수를 알 수 없지만… 모두 종이의 크기에 따라 가로 세로의 크기가 맞지 않기 때문에 동서남북의 위치가 바뀌어 지도를 살펴보아도 근거할 만한 것이 없으니 장님이 길을 가는 것과 같다”며 “나는 이런 단점을 보완해 이 지도를 만들었다”고 해 이 지도의 정밀함을 과시하고 있다.
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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