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내다보이는 파크 하얏트 호텔에서 만난 윌 스미스(36)는 울퉁불퉁한 왼팔을 내 보이며 떠벌였다.
30일 국내 개봉되는 영화 ‘아이, 로봇(I, Robot)’에서 그는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가정용 로봇들이 범죄를 저지를지 모른다며 의심하는 미래시대의 경찰 스프너 역을 맡았다. 스프너는 사고로 팔을 잃은 뒤 강력한 로봇 팔을 부착하는데, “이 팔 진짜냐?”고 물은 기자의 질문에 더 장난스럽게 “대단하지 않아? 특별하지?”하며 근육 자랑을 해댔다. 그는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밥 먹고 쉬는 시간에도 나는 몸만들기를 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 ‘맨 인 블랙’이나 ‘알리’ 등에서 늘 조잘조잘 거렸던 윌 스미스는 어쩌면 진정한 ‘떠버리’다. 실제로도 그래미상과 아메리칸 뮤직상을 받은 인기 래퍼. 하지만 ‘아이, 로봇’에서 그는 달라지려 한다. 미래시대(2035년)에 2004년 형 신발을 특별 주문해 신고 다니며 커피에 설탕을 열 스푼이나 넣는 ‘아날로그 형 인간’ 스프너는 불행한 사고에서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기억에 고통 받는 어두운 인물이다.
“연기에 가장 애먹은 순간”을 묻자 그는 지체 없이 이렇게 답하며 껄껄거렸다. “불행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 거요. 현실의 난 매일 아침 일어나면 행복해 죽을 지경이에요. 그런데 스프너는 아침마다 고통스럽게 일어나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보여주잖아요. ‘인디펜던스 데이’나 ‘맨 인 블랙’ 같은 블록버스터들에서 난 똑같은 캐릭터였죠. 하지만 여기서는 두려웠어요. 관객이 내게 원하는 게 가벼운 농담도, 몸으로 하는 코미디도 아니라고 생각하니. 게다가 제작사에선 나에게 돈을 막 때려 붓지…(웃음)”
윌 스미스는 인터뷰 중 무려 7번이나 ‘versus(∼와 대비하여)’란 단어를 써가며 ‘이것이냐 아니면(versus) 저것이냐의 문제였다’란 표현을 즐겼다. ‘아이, 로봇’을 통해 그간의 유쾌하고 가벼운 이미지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윌 스미스가 무엇이 될 것이냐’ 대(對) ‘윌 스미스가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의 싸움이죠. 그동안 비슷비슷한 캐릭터로 출연하면서 ‘이번엔 어떤 역할이냐’가 중요했다면, ‘아이, 로봇’에선 내가 ‘무엇을 창조할 것이냐’가 관건이죠.”
그는 “‘아이, 로봇’이 ‘글래디에이터’나 ‘포레스트 검프’처럼 작품성도 인정받고 흥행도 대박이 났으면 좋겠어요. 근데 이런 일은 잘 안 일어나죠?”라고 웃으며 말하더니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멋진 변명을 이어갔다.
“할리우드 영화는 해피 엔딩이고 예쁜 여자 구출하고…, 늘 이래서 ‘악명’이 높은 걸 알아요(웃음). 하지만 난 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스타워즈’에서 가졌던 감정을 느끼기를 원해요. ‘지금 그대로의 무엇(What it is)’이 아니라, 늘 ‘만약에(What if)’라고 질문하며 가능성을 좇는 영화 말이죠. 와! 난 사람들이 ‘이기는’ 영화가 좋아요. 나, 윌 스미스는 희망을 팝니다.”
그는 제작사를 차려 로버트 드니로와 에디 머피가 주연한 ‘쇼타임’을 만드는 등 제작자로서도 입지를 굳히고 있다. 감독에도 욕심이 있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감독은 이런저런 사람들 다 책임져야 하잖아요. 6∼7개월간 매일 한 작품에만 집중해야 되고. 아이고, 난 안 돼요. 틈만 나면 전화도 하고 수다도 떨어야 하거든요.” 그는 어느 새 ‘아이, 로봇’에서 툭 튀어나와 다시 수다쟁이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드니=이승재기자 sjda@donga.com
▼‘아이, 로봇’은 이런 영화▼
서기 2035년 미래 사회. 인간은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들 덕분에 안락한 생활을 누린다. 로봇들은 인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로봇 3원칙’을 준수하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있다. 어느 날 신형 로봇 ‘NS-5’ 출시를 앞두고 개발자 래닝 박사가 갑자기 죽자, 시카고 경찰 스프너(윌 스미스)가 수사에 나선다. 그는 로봇 심리학자 캘빈 박사(브리짓 모나한)의 도움을 받아 수사하던 중 로봇의 엄청난 음모를 발견한다.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