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테크노 사운드, 리듬의 매력에 빠져봐”

  • 입력 2004년 7월 22일 16시 15분


《단순하게 반복되는 리듬. 무표정한 컴퓨터 사운드. 왠지 정신없고 나이트클럽이나 홍대 앞 클럽에서나 유행할 것 같은 테크노 음악. 그러나 이 테크노 음악이 우리가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어깨를 겨룰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망 있는’ 분야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언어와 정서, 감정이 어우러져야 하는 다른 장르와 달리 테크노는 이 모든 것이 생략된 채 ‘음악’만으로 승부할 수 있기 때문. ‘노래’를 해야 하는 대중가수들보다 ‘악기’로 승부하는 클래식 연주자들이 세계 무대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과 비슷하다.》

테크노 음악 프로듀서 ‘가재발’(본명 이진원·34)씨. 최근 싱글 앨범 한 장(수록곡 Muul,Maniac)으로 유럽 3대 테크노 음반 사이트인 영국의 튠인(tuneinn.com)에서 2주 연속(6월14∼27일) 1위를 차지한 한국 테크노 분야의 개척자다.

● 홍대 앞에서 유럽으로

테크노 음악 프로듀서 ‘가재발’(본명 이진원·34)씨. 최근 싱글 앨범 한 장(수록곡 Muul, Maniac)으로 유럽 3대 테크노 음반 사이트인 영국의 튠인(tuneinn.com)에서 2주 연속(6월14∼27일) 1위를 차지한 한국 테크노 분야의 개척자다.

소수 마니아나 좋아할 것 같은 테크노 음악. 그러나 일단 무표정하고 단순한 리듬에 빠져들면 걷잡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가재발씨는 말한다. -이종승기자

‘가재발’이란 이름은 잘 몰라도 그가 작곡한 ‘엉덩이’란 곡은 꽤 알려진 편이다. 테크노 음악의 특성상 방송이나 라디오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지만 헬스클럽이나 나이트클럽, 휴대전화 컬러링으로 잘 알려진 곡.

젊은 여자가 코맹맹이 소리로 “엉덩이를 들어봐. 왼쪽을 좀 들어봐∼”라고 무덤덤하게 노래하는, 쉽게 말해 상당히 상업적인 곡이다.

언더그라운드 뮤직을 지향하는 그로서는 다소 예외적인 일이지만 아직 대중적이지 못한 테크노와 국내 대중의 접점이 어디인지 알고 싶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미국 뉴욕에서 전자음악과 엔지니어링을 공부한 그는 1999년 귀국한 후 주로 가수들의 음반 제작을 도우며 홍대 앞 클럽에서 DJ로 활동해 왔다.

그를 두고 ‘홍대 앞 출신이 세계 무대로 진출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사실 채 몇 년이 안 되는 한국 테크노 음악의 역사를 볼 때 그가 해외 시장에서 연속 2주나 1위를 차지한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동차를 처음 만든 회사가 몇 년 만에 세계적인 차를 만든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튠인’의 순위는 매주 이 회사의 스태프와 유럽 전역의 DJ들이 한 주간의 테크노 앨범 판매량과 방송 횟수를 조합해 결정한다. 음악의 취사 선택권을 가진 전문가들인 만큼 이곳에서 1위를 했다는 것은 음악성이나 실력 면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튠인은 테크노와 일렉트로니카 음반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유럽 굴지의 음악 사이트로 테크노 음악계의 ‘아마존’이라고 불릴 만큼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유럽 테크노 차트에 한국 음악가가 순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 10여년 전 일본의 겐 이시이가 벨기에에서 데뷔한 이후 가장 극적인 동양인 음악가의 등장이라는 평.

● 테크노의 매력

국내 방송에서는 거의 틀지도 않는 분야인데 어떻게 세계 시장에서 승부를 하겠다는 것일까. 그는 테크노의 전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노랫말 중심의 음악은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는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죠. 외국인이 판소리를 하면 가슴에 와 닿기가 어렵잖아요. 하지만 테크노는 노랫말이 안 들어가도 상관없으니까 그만큼 거부감이나 장벽이 적다고 할 수 있죠.”

그 가능성을 이번 튠인 차트 입성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가 한 장의 앨범으로 이 같은 성과를 얻은 것은 아니다. 지난 2년여간 개인적으로 만든 데모 앨범 3장(총 30여곡)을 전 세계의 음반회사, 사이트, 방송국 등에 보내 소개한 결과다.

앨범 3장이라고 하면 숫자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일반 대중가수들이 앨범 한 장을 내기 위해 짧게는 1년, 길게는 몇 년씩 고생하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게 아니다.

아주 무식한 질문을 던져 봤다.

“테크노란 것이 정신 사납고 춤출 때나 듣는 곡 아닌가요. 무슨 매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테크노는 어떤 감정을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아요. 단순한 리듬의 반복이니까. 예를 들어 발라드는 자기가 지닌 속성을 사람에게 호소하려고 하잖아요. 경쾌한 곡도, 슬픈 곡도 음악을 듣다 보면 ‘내게로 빠져봐…’ 하는 느낌을 주죠. 하지만 테크노는 그냥 무덤덤해요. 심플하다고 할까.”

● 청바지에 면 티

음악을 한다고 하면, 특히 테크노를 한다고 하면 괜히 폭탄 맞은 머리에, 밤에도 선글라스를 쓰고, 제멋대로일 것이라는 선입관이 작용한다. 물론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저 평범한 보통 젊은이였다.

“글쎄요…. 옷차림이나 화장, 외모에 신경 쓸 새가 없어서죠. 굳이 다른 것으로 ‘나’를 표현하지 않아도 음악으로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그는 뉴욕 유학시절 그 유명한 퀘드 리코딩 스튜디오와 사운드 트랙스 리코딩 스튜디오의 엔지니어로 본 조비, 재닛 잭슨, 우탱 클랜 등 유명 뮤지션의 앨범 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또 귀국 후에도 박지윤, S#ARP, god, 이박사, 이윤정 등의 음반에 리믹서와 편곡자로 참여했다.

그는 언더그라운드를 지향하지만 ‘주류가 되지 못한 비주류’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언더 뮤지션들이 뭔가 있어 보여도 사실 대중적인 뮤지션들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죠. 언더에 있어도 뛰어나면 당장 스카우트돼 주류에 편입되는 게 현실이거든요.”

지금 하고 있는 ‘언더’ 분야를 실력으로 주류에 포함시킨 뒤 자신은 또다시 더 실험적이고 새로운 언더를 찾아갈 것이라는 말.

그는 “새로운 것을 찾고 실험적인 요소를 도입하려면 기존의 것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자칭 ‘언더’라면 더 많은 실력을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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