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의 가리산수도원. 16명의 수련생들이 가락에 맞춰 미동도 없이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조동원 수도원장(78·여·사진)은 기자를 보자 큰절을 했다. 천도교에선 큰절이 인사법. 조 원장은 “천도교는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 선생이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21자의 주문을 외워 도를 깨닫는 수련법을 갖고 있다”며 “주문은 자기 안에 모셔진 한울님과 밖에 있는 한울님의 기운을 서로 통하게 해 자기가 한울님이라는 사실을 깨치게 한다”고 말했다.
수련생들은 1주일 동안 오전 4시반부터 오후 9시까지 식사와 휴식 시간을 빼고 21자 주문을 외우고 또 외운다. 이렇게 하면 하루 약 1만5000번을 반복한다. 수련 중에는 물고기 짐승고기 술 담배 등 어육주초(魚肉酒草)를 금한다.
2시간 동안 콩 볶는 소리처럼 이어지던 주문이 뚝 그친다. 큰 소리로 외우던 현송(顯誦)이 끝나고 속으로 주문의 뜻을 새기는 묵송(默誦) 시간이 이어진다.
남편과 함께 수련회에 참가한 오연순씨(38·대구 달서구 용산동)는 “얼마 전 묵송 시간에 남편과 그동안 무엇 때문에 싸웠나를 되돌아보면서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편에게 자꾸 뭔가를 요구했던 것 같아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안에 쌓여 있던 불만이 하수구 뚫리듯 빠져 나간 느낌이라고 전했다.
조 원장은 “오씨가 한울님의 기운을 느끼는 수련의 첫 단계인 강령(降靈) 체험을 한 것”이라며 “자신에 대한 참회가 계속되면서 사람이 바뀌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105일 동안 독공(혼자 수련하는 것) 중인 한의사 조영제씨(32·인천 남동구 만수동)는 부인과 두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는 “주문은 마음을 이끄는 고삐와 같다”며 “화가 날 때나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주문을 외운다”고 말했다.
소규모 건설업을 하는 박남영씨(52·서울 강서구 화곡동)는 “주문 수련은 언제나 할 수 있지만 주문에 전념하기 위해 매년 여름과 겨울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천도교의 주문 수련은 강령→대강령→강화(降話·한울님과 대화하며 가르침을 받는 것)→자천자각(自天自覺·스스로 한울임을 깨닫는 것)→대도견성(大道見性·청정무구한 마음의 본래 자리를 깨닫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단순히 외우는 것에 불과한 듯한 주문이 왜 효과가 있을까. 조 원장은 “주문은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로 내 안의 한울님을 느끼게 해준다”며 “남의 체험을 백번 듣는 것보다 자신이 한번 해보면 주문의 힘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통(道通)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주문을 외워서는 안 된다”며 “‘착하게 살겠다’ ‘올바르게 살아보겠다’는 정신으로 정성을 다해 외우면 ‘도통’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덧붙였다. 033-435-2385
▽천도교 주문 수련법
‘지기금지 원위대강…’으로 시작하는 천도교의 21자 주문 수련은 특별한 호흡법이나 자세를 요구하지 않는다.
정성된 마음으로 주문을 외우는 것 외에 정해진 룰이 없다. 다만 21자가 제법 길어 단숨에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만의 리듬을 타는 것이 필요하다.
1주일간 집중하거나 한달 정도 꾸준하게 수련하면 대부분 강령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조동원 원장의 설명. 하지만 이 단계 이후가 어렵다.
강령 현상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는 ‘대강령’ 단계를 지나 ‘강화’ 단계에 이르면 그간의 성과에 자만하기 쉽다. 이럴 땐 주문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반복하면서 겸손한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
조 원장은 “주문으로 시천주(侍天主)가 나를 잡으면 무엇을 해도 자신감이 생기고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남에게 자꾸 덕(德)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주장했다.
홍천=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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