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책의향기]‘천리장성에 올라…’ 펴낸 전성영씨

  • 입력 2004년 7월 23일 16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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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기기자

강병기기자

“때로 삶에서 우연한 계기가 인생의 방향을 트는 경우가 있지요. 6년 전인 1998년 4월 주문받은 잡지사진을 찍으러 중국 지린(吉林)성에 갔다가 지안(集安)에서 광개토대왕비를 만났을 때가 바로 그런 경우인 것 같아요. 고구려 옛 수도의 한 도로변 비각에 세워져 있는 비석을 보고 며칠 밤낮 잠 못 이루는 전율을 경험했어요. 그때부터 마치 홀린 사람처럼 ‘고구려’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천리장성에 올라 고구려를 꿈꾼다’(360쪽·1만7000원·한길사)의 저자인 사진작가 전성영씨(사진)는 자신의 무기인 카메라를 들고 유적들을 찾아 다녔다. 남한의 고구려성과 크고 작은 보루들을 수십 번 방문했고 중국도 여러 차례 들락거렸다. 어려움도 많았다. 특히 중국 동북지방에 남아 있는 천리장성 답사를 하며 겪은 우여곡절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공안 파출소로 끌려가 며칠동안 조사를 받고 가진 돈과 장비를 압수당하기도 했다.

이 책은 6년간 중국과 남한 곳곳에서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겪은 고구려에 대한 사진과 글이다. 우리에게 막연히 자리하고 있는 ‘고구려성’의 실체를 우리 일상 속에서 끄집어 낸 것이다.

흔히 성이라고 하면 전쟁과 분쟁의 장소로 여기지만 저자가 보여주는 고구려성은 무엇보다 아름답다. 정교하고 우아한 성벽과 시설물은 성이 곧 생활공간이었던 고구려 사람들의 심성을 잘 보여준다. 성벽 돌들을 하나하나 둥글게 다듬은 뒤 산세를 거스르지 않고 따라가며 수십 리를 이어서 쌓은 성벽은 구불구불 곡선을 이룬다. 아찔한 절벽을 둘러가며 쌓은 성벽을 보면 그들의 과학적 지혜가 엿보인다.

“고구려는 성(城)의 나라입니다. 그들에게 성은 실용적이고 미학적이며 공동체 질서를 구현한 장소입니다. 고구려사가 중국 정부의 역사왜곡에 흔들리고 있는 지금, 중국 동북지방에서 한강 이남까지 퍼져 있는 고구려의 성들을 통해 고구려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 책은 중국 동북지방부터 한강 이남에 이르는 고구려성의 사진지도라 할 만하다. 중국의 역사왜곡으로 새삼 ‘고구려’가 시대적 화두로 등장한 시점에서 고구려를 성실한 시각자료로 증언하고 있는 책의 의미가 각별하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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