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장기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고 불황의 정도와 지속 기간에서 조금씩 편차가 있을 뿐이다. 민초들은 짜증을 내고 있고 ‘경제우울증’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일시적 침체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며 장기불황에 빠지지 않는 것이 과제다.
대조적으로 일본 경제는 장기불황의 늪에서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불황 탈출의 명백한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4분기 성장률은 5.6%를 기록했다. 일본 정부는 2004년 전망치를 당초 1.8%에서 3.5%로 대폭 상향조정했다. 기업 이익이 3년 연속 증가했고 수출, 투자, 소비 모두 호조를 보이고 있다.
다나카 나오키의 ‘부활하는 일본경제, 이렇게 달라졌다’는 일본경제 부활의 배경을 심층 분석한 책이다. 20여년간 경제평론가로 활동해 온 저자는 폭넓은 식견과 예리한 통찰력, 미래지향적 사고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책은 제목과는 달리 그리 낙관적이지 않고 일본 경제의 힘을 과대평가하지도 않는다. 차분하게 문제를 제기하면서 산업부문을 제외하고는 신랄하게 비판했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현실을 너무 안이하게 인식하고 미온적으로 대응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고 부실금융 처리를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특히 아시아 외환위기 때는 시스템 리스크가 진전되었는데도 통상적 불황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했다.
거시적 처방보다는 기업부문의 구조조정과 현금흐름 개선이 경제 부활의 근원적 에너지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기업들은 지난 10년간 과잉설비 폐기, 고정자산 매각, 생산성 향상 등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무조건적인 중국진출을 반성하고 일본 내 제조기술 혁신에 주력했다. 최근 들어 자신감을 바탕으로 투자를 재개하는 중이다.
저자는 일본경제의 과제로서 시장원리 작동과 글로벌 시각에서의 정책전개를 제안했다. 기업재생 전문가 양성, 자영업자 수 증대 등으로 경제주체들의 이익동기를 자극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는 조세 단순화, 법인세 폐지, 민영화 등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국제적 정책협조를 통하면 금융부실, 디플레이션, 고령화, 연금고갈 등이 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 결국 개혁의지와 글로벌 시각을 갖춘 지도자가 관건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이 책은 상황 진단과 방향 설정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지금처럼 심리가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어서는 경제 활성화가 불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기업이 경제재생의 엔진이라는 사실이다. 정부는 기업의욕을 북돋우고 기업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기업의 역할과 저력을 새롭게 바라보자.
일본은 경제평론가가 직업으로 존재하고 사회적으로 주목받는다. 우리는 전문가는 있지만 평론가는 거의 없다. 입장과 처방이 다르면 서로 인정하지 않는 풍토 때문이다. 구체적 교훈을 얻는 것 외에 경제문제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느껴 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색다른 재미다.
이 책이 계기가 되어 우리 경제에 대한 명쾌한 처방들이 쏟아져 나왔으면 한다. 수년 후 ‘한국경제, 이렇게 되살아났다’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serileo@s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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