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각광받는 토종작가
일본에서 먼저 ‘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그의 작품을 접해 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사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70년대의 시각이미지들을 차용한 다양한 작업 세계를 선보여 왔다. 요즘 불고 있는 복고 이미지 생산의 원조 격이다.
폭염으로 뜨겁던 23일, 그를 만나러 서울 종로구 낙원동 작업실로 갔다. 낙원아파트 15층 ‘가슴시각개발연구소’. 25평 방 안은 플라스틱 불상, 장난감 권총, 마징가 제트 로봇, 커다란 플라스틱 조화(造花)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창가에 앉아 있던 작가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6층 빌딩을 설계하는 중이었다. 미술가가 웬 설계까지?
“저는 미술가이기 전에 이곳 소장입니다. 명함, 잡지, 도록, 리플릿에서부터 영화미술, 인테리어, 건축, 무대, 공공미술까지 ‘보이는 모든 것’을 디자인합니다. 제게 가장 중요한 원칙은 ‘가슴’, 즉 ‘마인드’입니다. 단지 기술이 아닌, 가슴을 깨우는, 통찰력이 보이는 시각물들을 만들어 내자는 겁니다.”
○중요한건 가슴이지 기술 아니다
그러고 보니, 그는 10여년 동안 술집 인테리어 제작뿐 아니라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미술감독 등 ‘멀티플’ 활동을 해 왔다.
개인전 무산 배경을 물었더니 “견해 차이 때문”이라는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이미 취소된 전시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기가 껄끄러울 것 같아 작업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에게 “미술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미술이 뭐, 별건가요? 쉽고 즐거우면 되죠.”
작가의 말 그대로 그의 작품에는 복선이 없다. 그냥 눈에 보이는 그대로다. 그런데, 보면 즐겁다. 인테리어 회사에 다닐 때 서울 을지로와 청계천 재래시장, 골목길을 쏘다니면서 ‘몸에 착 달라붙는 뭔가’를 느끼면서 ‘플라스틱’ 재료들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싸구려 잡화들 모아 ‘작품’으로
그는 남들이 싸구려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플라스틱 소쿠리와 풍선들로 탑을 쌓고 꽃, 과일, 로봇을 만들었다. 작가의 탁월한 심미안과 조형감각으로 시장통의 싸구려들이 미술관, 갤러리의 예술작품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는 플라스틱에서 ‘날것, 진짜 같은 가짜, 썩지 않는 영원성’이라는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일찍이 ‘삶의 일상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결국, 산다는 것은 지루하고 단순하고 싸구려고 흔하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일상의 밑바닥에 널려 있는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한 것이다.
그는 ‘일상적’이라고 말하지만, 남들이 허투루 보는 것을 다르게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일탈적’이다. 그가 예술가이긴 하지만 통념적 예술가와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직접 일을 안 한다. 아이디어만 내고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킨다. 예술가 특유의 ‘고뇌하는 분위기’도 없다.
그는 자신의 삶과 예술의 키워드를 ‘싱싱, 빠글빠글, 짬뽕, 날조, 빨리빨리, 엉터리, 색색, 부실(不實), 와글와글’이라고 정리했다.
그에게선 여러 이미지들이 충돌했지만 그것은 유쾌한 어긋남이었다. 최정화씨는 구도자였고 탤런트였다. 영악했고 순수했다. 마초면서 소녀 같기도 했다. 단순하면서도 복잡했고 그 반대였다. 강하면서도 약해 보였고 또, 그 반대였다.
“선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이라고 묻자 그는 “잘 놀자”라고 말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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