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리골레토’…‘귀’는 즐거웠지만 ‘눈’은 아쉬웠다

  • 입력 2004년 7월 25일 18시 26분


‘리골레토’ 1막. 리골레토(레오 누치·오른쪽)가 딸 질다(조수미)에게 애틋한 아버지의 정을 노래하고 있다. -사진제공 세종문화회관
‘리골레토’ 1막. 리골레토(레오 누치·오른쪽)가 딸 질다(조수미)에게 애틋한 아버지의 정을 노래하고 있다. -사진제공 세종문화회관
‘리골레토’는 함부로 보러 갈 수 없다. 이미 너무 좋은 것만을 구경했기 때문에 입맛이 지나치게 까다로워졌다고나 할까. 처음 본 무대가 1966년 그야말로 ‘꿈의 캐스팅’인 이탈리아 로마의 공연. 만토바 공작에 뉴욕 메트에 데뷔하기 전의 루치아노 파바로티. 질다 역엔 마리아 칼라스 이후 최고의 콜로라투라 가수인 전성기의 레나타 스코토. 리골레토엔 코스타스 파스칼리스, 지휘는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그 뒤에도 니콜라이 게다가 만토바 공작을, 혹은 힐데 귀덴이 질다를 부르거나 하면 보러 갔다. 한 군데도 버릴 구석이 없는 베르디의 이 벨칸토 오페라를 2류의 캐스팅으로 구경한다는 것은 내겐 일종의 ‘신성모독’으로 느껴졌다.

근자엔(벌써 5, 6년 전이지만) 파리의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순전히 연출 때문에 ‘리골레토’를 구경한 것이 마지막이다. ‘대마술곡마단(LeGrand Magic Circus)’출신으로 오페라 감독이 된 제롬 사바리의 연출은 20여년 전 처음으로 구경한 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만큼이나 내 의표를 찌르고 있었다.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한 오페라 ‘리골레토’는 조수미와 바리톤 레오 누치가 출연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수미가 리사이틀이 아니라 오페라 무대에서 ‘리골레토’를 부른다니 충성스러운 팬으로서 안 가볼 수 없다. 실례인지 모르나 나는 조수미를 리타 슈트라이히와 견주곤 한다. 내가 부지런히 구경을 다녔던 1960년대 유럽에서 슈트라이히는 당대 제1급의 콜로라투라 가수였다. 그러나 슈트라이히는 40세 이후엔 오페라 무대에 서지 않고 주로 독창회 또는 음반을 통해서 팬들에게 다가왔다.

조수미도 마찬가지. 뉴욕 메트나 베를린 도이치오퍼에서 오페라에 출연했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난 놓치고 말았다가 이번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드디어 오페라 무대의 조수미를 만났다.

리골레토를 맡은 누치는 육순의 고령에도 늙지 않은 미성과 가창력으로 바리톤 가수의 장수를 시위해 주고 있었다. 그게 누구에게나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언젠가 비슷한 나이에 서울에 와서 ‘삼손과 데릴라’를 듣기가 민망하게 부르고 간 왕년의 명 바리톤 존 비커스의 경우를 떠올려 보면 될 것이다.

조수미를 누치와 함께 들은 건 소득이었다. 그러나 만토바 공작을 노래한 남미 출신의 30대 가수는 도무지 조수미의 짝으로선 청각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어울리지 못한다고 여겼는데 어떨지…. 19세기 말로 돌아간 듯한 무대미술, 말뚝처럼 움직임이 별로 없는 합창단원의 저립(佇立). 이탈리아의 한 테아트로 코무날레(지방극장)의 장거리 비행의 여독일까. 객석에서 나는 어느 음악송(頌)의 시구처럼 내내 ‘눈감고 숨죽이고 귀만 남아 있어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최정호 객원大記者·울산대 석좌교수 chchoe@hanmail.net

▼리골레토▼

27, 28일 오후 7시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4만∼30만원. 02-39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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