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병마딛고 화혼 불태우는 박수룡 화백

  • 입력 2004년 7월 26일 18시 38분


신작 앞에 선 박수룡 화백. 올 가을 개인전을 앞둔 그의 작업실은 소품이지만 밀도가 깊고 생의 찬미가 넘치는 작품들로 가득했다. -남양주=허문명기자
신작 앞에 선 박수룡 화백. 올 가을 개인전을 앞둔 그의 작업실은 소품이지만 밀도가 깊고 생의 찬미가 넘치는 작품들로 가득했다. -남양주=허문명기자
아파트 숲을 지나니 야트막한 산에 작은 저수지가 있는 시골마을이 나온다.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 서양화가 박수룡(50)의 집은 아담한 벽돌집이었다. 작업실로 들어서니 화학물질 냄새가 코를 찌른다. 포마이카와 본드냄새라고 한다.

흡사 부조(浮彫)를 연상시킬 정도로 요철이 심한 ‘균열’과 ‘마모’가 특징인 그의 회화는 붙이고 태우고 지지고 깎고 도려내고 문지르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데 몸에 해로운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사실, 저것들 때문에 몸이 이렇게 망가졌는데….”

급성간경화로 간이식을 받는 대수술과 긴 투병으로 2년여 시달려 온 박 화백은 ‘붓을 들고 쓰러질망정 작업을 멈출 수는 없다’는 투지를 불태우며 올가을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투병 후유증으로 당뇨가 생기고 악성종양으로 위장의 60%를 잘라내는 수술도 거쳤다. 그러나 병마는 화업을 쓰러뜨릴 수 없었는지 작업실엔 폭염도 새어들지 못할 정도의 ‘재기’를 향한 중년 화백의 집념으로 가득했다.

신작은 소품이 많았다. 평소 대작만 고집해 온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여 우선 안타까움부터 일었다. “캔버스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며 농담하듯 던지는 그의 얼굴에 언뜻 쓸쓸함이 스친다.

작품 크기는 작아졌지만 ‘울림’은 더 강해졌다. 황토색 위주였던 색채는 더욱 다양한 빛깔로 경쾌하고 따뜻해졌으며 깊어졌다. 평소 우리 산하를 배경으로 한국적 색채를 찾아 그려 온 주제에서 벗어나 생사를 넘나들며 영육을 온전히 절대자에게 내맡길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내면 풍경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았기 때문이다.

말을 타고 새들과 함께 예수에게 달려가는 자화상이 있는가 하면 호랑이 등을 탄 채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도 있다. ‘말’이나 ‘호랑이’로 상징되는 힘과 에너지를 향한 갈급, 여리고 약한 인간으로서 절대자에 순종하려는 마음,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서 생을 좀 더 즐겨야 한다는 강박…. 이 모든 것이 화폭에 담겨 있었다.

“투병을 하면서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하는 몸이 얼마나 불쌍했는지 모른다”는 작가의 생각을 표현한 ‘똥 누는 남자’는 다름 아닌 ‘쾌변의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고향(전남 해남군)에 대한 애틋함도 더해졌는지 아예 고향의 흙을 화면에 붙인 작품도 눈에 띈다.

조선대 사범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입상한 그는 우리 화단에서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며 변신과 실험을 거듭해 온 정열의 화가였다. ‘이제 비로소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즈음 그를 덮친 병마는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불면증과 대인기피증도 견디기 어려웠지만 다시는 붓을 잡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싸워야 했다. 통음도 하고 한탄도 해 보았지만 결국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화폭이었다.

“살려만 주시면 뭐든지 다하겠다고 기도했던 적이 있었다. 이제 그 에너지를 그림에 쏟아 부으니 색이 보이고 리듬이 보인다”는 그는 “살아 있는 이 순간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을 화폭에 더 담고 싶다”고 말했다.

남양주=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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