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이하 강제동원진상위)를 구성하면서 학계 전문가를 배제하고 검찰. 경찰 공무원에게 조사지휘를 맡길 계획이어서 시민단체 등이 반발하고 있다.
▽역사적 ‘조사’를 검찰이 ‘수사’▽
27일 행정자치부가 입법예고한‘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특별법’시행령에 따르면 위원회에서 조사를 맡는 부서는 조사총괄과, 조사1.2과 등 모두 3곳.
이들 3개 과의 조사책임자인 과장을 검찰수사 서기관이나 총경 또는 4급 상당 별정직 국가공무원이 맡도록 하고 있다.
이같은 시행령이 발표되자 그동안 강제징용 문제를 연구해 온 ‘강제동원진상규명시민연대’가 비난하고 나섰다.
28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시민연대'의 운영위원장 장완익 변호사는 “조사 대상 시기는 1931년 만주사변부터 1945년 해방까지로 이 시대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학자가 조사를 맡는 것이 타당하다"며 "그럼에도 주로 현실문제에 대한 수사를 전문으로 하는 검찰과 경찰에게 맡기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시행안을 만든 행정자치부 산하‘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준비기획단’의 이은경 사무관은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조사가 진상규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아무래도 검찰이나 경찰이 조사 방법이나 절차에 전문성을 갖고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시행령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기획단장 이진흥 서기관은 외부의 반발을 의식한 듯 “아직 확정된 것은 없으며 다만 조사과장의 임명은 폭넓게 임명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게 뒀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 “공청회 안한다” 학계 “보이콧도 불사”▽
기획단은 또 시행령 '입법 예고' 기간을 규정 20일에서 10일로 대폭 줄이고 이 기간동안 공청회를 열 계획도 전혀 마련하지 않아 최소한의 여론 수렴조차 외면하려 한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기획단 이 사무관은 “시행령 준비가 늦어져서 법제처와 협의 끝에 입법예고 기간을 단축했다”며 “행자부 공무원들이 이 문제에 전문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 위원회를 꾸린 다음에 위원들을 중심으로 공청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같이 문제가 잇따르자 학계와 시민단체는 아예 위원회 참여를 거부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정혜경 시민연대 기획단 대표(정신문화연구원 박사)는 “그동안 학계와 시민단체가 정부에 기획서와 의견서를 제출하고 ‘수사’와 ‘조사’가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해왔다”며 “그런데도 이런 졸속 안이 나온 것은 정부의 의지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가 위원회 참여 보이콧까지 불사하고 나선 데에는 정부의 '본심'에 대한 불신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2월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특별법’의 국회 논의 당시, 특별법 원안에는 ‘위원회의 진상규명 결과에 따라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피해보상 청구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으나 최종 확정안에는 외교통상부의 반대로 이 부분이 빠졌다.
정 대표는 “강제징용진상규명을 위한 위원회 구성은 일제시대에 빼앗긴 우리 역사를 되찾을 유일한 기회라는 것이 학계의 일치된 견해”라며 “정부가 위원회 구성에 다시한번 진지한 재검토를 해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김현 동아닷컴기자 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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