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에서 만난 배종옥씨(40). 요즘 그는 연극 ‘데드 피쉬’(팸 젬스 원작·채승훈 연출)의 연습에 푹 빠져 있다. 5년 만에 다시 서는 연극무대다.
“우리나라에서 초연하는 작품이에요. 여자들의 얘긴데 신세 한탄이나 수다 떠는 게 아니어서 마음에 들었죠.”
기존의 페미니즘 연극이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갈등을 주로 다뤘다면, ‘데드 피쉬’는 그런 문제쯤은 이미 극복한 것처럼 보이는 여성운동가가 주인공이다. 배씨가 맡은 역은 귀족 출신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인 피쉬. 이 연극은 현실과 이념 사이의 괴리로 인해 혼돈과 좌절을 겪는 피쉬를 통해 남성들과 연대한 페미니즘 정치투쟁보다 여성들의 자매애를 부각시킨다.
● 무대의 선택, 현실의 선택
실제의 그와 피쉬가 겹치는 부분이 있을까. “안 겹쳐요. 절대로.”
그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바라보는 시선을 불편해 했다.
“그냥 난 내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일 뿐이죠. 20대 후반부터 당찬 여성 역할을 하니까 그렇게 보일 뿐이지 내 안에 특별히 페미니스트적인 게 있는 것 같진 않아요.”
극중 피쉬는 아이를 갖고 싶어 하고, 이념을 공유했던 남자와의 사랑도 꿈꾼다. 하지만 남자의 배신을 겪으며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피쉬의 선택은 자살이지만 이게 우리 연극의 중심은 아니에요. 이 연극은 현실에서 피쉬같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보여주죠.”
● 연기 잘하는 배우, 노력하는 배우
1985년 KBS 탤런트 특채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19년이 됐다. 그는 TV, 연극, 영화를 넘나들며 늘 연기 잘하는 배우란 찬사를 받아 왔다.
“그럼 연기를 다 알아야할 것 같은데 만날 연기를 모르는 것 같아서 갑갑해요.”
예의상의 겸손이 아니라 그는 항상 자신과도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 듯 보였다.
“저는 노력하고 공부하는 재미로 연기해요. 아주 잘했다, 그런 만족감에 도취될 때는 그다지 없죠. 윤여정 선생님, 박성미 언니, 노희경씨도 꼭 안 좋은 부분만 얘기하거든요.(웃음) 전 ‘연기를 못하진 않지만 문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죠.”
지금까지 그의 출연작을 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때론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치열하게 인간과 현실에 밀착된 작품을 주로 선택했다.
“인간을 관찰하는 게 재미있거든요.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이나 이번 작품도 그렇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작품이 좋아요.”
사실 그에겐 많이 해본 TV 드라마 연기가 가장 편하다. 그런데 연극 무대에 서는 이유는?
“끊임없이 날 변화시키고 싶은 욕구의 결과겠죠. 매일 편한 것만 하면 매너리즘에 빠지잖아요.”
● 미래보다 현재가 더 중요하다
이날은 그를 격려하기 위해 찾아온 팬클럽 회원들이 저녁회식을 마련했다. 극장 옆 철길을 따라 삼겹살 집으로 걸어갔다. 연극할 때면 그는 ‘힘이 달려서’ 고기를 자주 먹는다.
일상 대화에서도 그는 어미를 흐리는 법 없이 또박또박 완결된 문장으로 말을 이어갔다. 실제 성격이 궁금했다.
“우리 엄마 표현에 의하면 전 굉장히 조용한 아이였대요. 내가 생각해 봐도 나서는 거 싫어하고 조용히 내 일 하는 게 좋아요.”
여배우로서 나이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까.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 필요하죠. 주역 아니라도 중요한 역할이 있잖아요. 그런 거 하면 되죠, 뭐.”
배우로든, 자연인으로든 그는 자기 느낌에 충실하고 솔직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인생을 사는 것, 그게 그의 매력인 듯했다.
8월 14일∼10월 10일 화 목 금 오후 7시반, 수 토 오후 4시 7시반, 일 오후 3시. 산울림소극장. 1만5000∼3만원. 02-334-5915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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