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시는 좀 더 많은 걸 알려준다. 그는 “개당 50원짜리 실밥 따기에 코피를 쏟으며”(‘시의 힘 욕의 힘’) “학비벌이 부업으로 야간대학을 다녔고”(‘까치집’),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색인 교정 아르바이트 일당 4만원으로 장만한 286컴퓨터로 시를 쓴다”(‘나의 아나키스트’). 요즘도 간간이 쓰는 그림동화의 글 부업은 그에게 “밥이 되고, 공과금이 되고, 월세가 된다”(‘궁핍이 나로 하여’).
시인 정우영은 그의 시를 일러 ‘민중서정시’라고 했다. 정 시인의 평처럼 “80년대의 억센 민중시가 구현하지 못한” 소담한 일상을 그린 김태정의 시들은 “순정해서 말갛고 깊다”.
‘네 뼈로 내 뼈를 세우리/네 살로 내 살을 보태리…은빛 비늘의 눈부심으로/무디어진 내 눈물을 벼리리/어느 날 문득 육지를 보아버린/네 그리움으로/메마른 서정을 적시리….’(‘멸치’)
13년이란 시간이 압축된 밀도 높은 시들과, 삶이 그대로 시가 되었을 때에 느껴지는 절실함과 진정성에 이끌려 지난달 29일 모처럼 서울을 찾은 시인을 도심에서 만났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생머리를 뒤로 묶은 그는 35도까지 치솟는 찜통더위에도 셔츠의 단추를 목 끝까지 여민 채 나타났다. 그의 시가 그 모습 위에 겹쳐졌다.
“‘적당히’가 적당히 안 되는 불온한 시인이여….”(‘샤프로 쓰는 시’)
그는 올 초 땅끝마을인 전남 해남에서도 한참 더 들어간 시골마을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그는 TV도 없이 라디오를 벗 삼고, 작은 마당에 반찬거리 야채를 일구면서 시를 쓴다.
13년 만에 낸 첫 시집에 대해 그는 차분했다.
“어차피 평생 시를 쓸 거니까요, 시밖에 가진 게 없으니까요.”
그는 “시만 빼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했다. 왜 시를 쓰는가 물었다.
“시는 저를 숨쉬게 하는 유일한 통로예요.”
삶이 그의 시가 된 것이 아니라 시가 그의 삶 전체였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