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입니다. 회사명 ‘윤스 칼라(Yoon's Color)’도 이 색을 뜻하지요. 블루와 핑크는 낮과 밤의 흔적이 공존하는 시간에 만들어지는 색상이에요.”
드라마 ‘겨울연가’로 연일 일본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윤석호 감독(47)이 전남 영광에서 직접 찍었다며 내미는 일몰 사진의 노을이 놀랍게도 핑크이고 하늘은 블루였다.
사람들이 검붉은 노을을 보는 사이 환상적인 색을 잡아내는 섬세함. 윤 감독의 취향은 소녀적이지만 강했다. 자살을 기도하던 40대 일본 여성이 ‘겨울연가’를 보고 “살고 싶다”는 의욕을 느꼈고, 괄시와 냉대에 숨어 살던 일본 민단(民團) 부인회 회원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게 됐다”며 펑펑 울었다.
제작사와 KBS가 ‘겨울연가’로 벌어들인 매출액은 1000억원이 넘는다. 교도통신은 ‘더 알고 싶어, 윤석호 감독의 연출세계’라는 윤 감독의 평전을 준비 중이다.
―‘겨울연가’는 일본에서 더 인기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얼떨떨합니다. 제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사랑하고 싶어도 상대를 다치게 할까봐 마음 졸이는 사람들이죠.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일본인들의 성향과 통하는 점이 있었나 봅니다.”
―제작 단계부터 일본 시장 진출을 생각하셨나요.
“아닙니다. ‘가을동화’를 본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한국에 관광 오는 것을 보고 처음부터 이 시장은 염두에 두었습니다. 눈이 하얗게 쌓인 영상을 많이 집어넣었죠. 또 누구나 부담 없이 볼 수 있도록 불륜과 같은 껄끄러운 장치들은 배제했습니다.”
―해외 시장에서 통하는 배우들이 따로 있습니까.
“개성파보다는 꽃미남이 유리합니다. 한국에서는 꽃미남이 아니어도 한국어 대사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더빙이나 자막 처리하는 해외시장에서는 비주얼이 중요하죠. 특히 멜로는 감정이입을 해야 하니 그만한 ‘가치’를 지닌 사람이어야 하죠.”
―윤 감독의 연출세계에 영향을 준 변수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초중고교 시절 서울농업대(현 서울시립대) 교수이셨던 아버지와 대학 관사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은 온실과 목장과 울창한 숲이 있는 전원의 축소판이었죠. 전원에서 생활하며 얻은 감수성 때문인지 자연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영상들을 드라마에 담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미혼입니다. 제 드라마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같은 리얼리티가 없죠. 순수하고 아름다운, 긍정성을 가진 판타지가 제 드라마의 특징입니다. 결혼을 했다면 이런 판타지는 못 만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가을동화’ ‘겨울연가’ ‘여름향기’ 등 계절 연작이 나온 거군요. ‘봄의 왈츠’(가제)는 언제 만드실 건가요.
“봄은 짧습니다. 내년 봄에 일부를 찍어놓고 내후년 봄에 찍으면서 방송을 할까 계획 중입니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 제작 여건상 사전 제작이 어려워 고민이 많습니다. 그리고 ‘겨울연가’ 후속으로 일본의 ‘한류’ 열풍을 이어갈 작품을 구상 중입니다.”
―‘한류’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화 콘텐츠에선 신명이 큰 장기가 될 수 있습니다. 사전 제작이 어려워 정교하지는 못해도 에너제틱한 국민성은 장점입니다.”
―요즘 젊은 작가와 PD가 만드는 트렌디 드라마들이 인기가 높습니다. 혹시 위기의식 같은 건 안 느끼세요. 변화를 시도하실 생각은….
“지금은 디지털 시대인데 제 작품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강조하고 있지요. 하지만 잘 만들면 볼 겁니다. 잘 만들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결혼을 하시면 굉장한 자극이 될 텐데요.
“저는 안방에 감추어야 할 화장실이란 존재가 딸려 있는 아파트 구조에 불만이 많습니다. 여자 만나기 쉽지 않은 성격이죠. 하지만 요즘은 한 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것 같아 결혼을 포함해 풍부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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