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지옥에서 온 악마 ‘헬보이’

  • 입력 2004년 8월 12일 16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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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무비 앤 아이
사진제공 무비 앤 아이
《‘지옥(Hell)’과 ‘소년(Boy)’. 상반된 이미지의 두 단어를 천연덕스럽게 풀칠한 제목이 암시하듯, 20일 개봉되는 영화 ‘헬보이(Hellboy)’의 진짜 주인공은 충돌하는 이미지와 아이러니 자체다. 이 영화는 액션 블록버스터의 당연법칙을 비틀어 선과 악, 명과 암, 미와 추, 가학과 피학의 경계를 허물어버린다. 아니, 그것을 지나쳐 아예 이들이 일란성쌍둥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제2차 세계대전. 궁지에 몰린 나치는 러시아의 흑마술사 라스푸틴에게 지옥의 악마를 불러오도록 하는 음모를 꾸민다. 지옥의 문이 열리는 순간 연합군의 공격이 시작된다. 지옥에서 지구로 불려온 ‘악마소년’ 헬보이는 연합군 측 브룸 교수에게 입양돼 악에 맞서는 전사로 성장한다. 60년 후 부활한 라스푸틴은 헬보이가 사랑하는 여성 리즈를 볼모로 잡고 헬보이에게 악마로 돌아가 지옥의 문을 열 것을 요구한다.》

마이크 미뇰라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의 주인공 헬보이는 관객의 손쉬운 예상을 배신하는 모순 덩어리다. 선(善)의 수호천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추남이며, 오른쪽 주먹만 엄청나게 큰 몸은 심각한 좌우불균형이다. 시가를 물고 “이런 제길(Damn)!”을 연발하며 성가신 표정으로 괴물을 처치하는 주인공이 끔찍하게 좋아하는 것은 고양이와 초콜릿 바, 팬케이크와 클래식 음악이다. 이런 아이러니의 행진은 헬보이의 태생에서부터 출발한다. 악을 처단하는 헬보이가 원래는 악을 전파하는 악마라니!

반(反)영웅의 위태롭게 흔들리는 이런 정체성이 어둡고 무거운 감수성에 올라탄다. 그러면서 내용은 고스란히 스타일이 되고, 스타일은 자체로 내용을 웅변하게 된다. 이마에서 자라나는 두 뿔을 매일 아침 면도하듯 깎아대는 헬보이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악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속내를 드러내는 어두운 유머다.

‘헬보이’의 액션은 때리는 것(가학) 못지않게 얻어맞는(피학) 주인공의 측은한 모습을 부각시킨다. 창의적이고 날렵한 동작보다 육체와 육체가 투박하게 맞부딪치는 ‘충돌’ 자체가 액션의 관심사인 것이다. 이는 저주받은 태생의 자장(磁場)으로부터 한걸음 한걸음 멀어지려고 애쓰는 헬보이가 겪는 수난을 무슨 종교 행위처럼 보이게 만든다.

상승-하강의 주기를 반복하며 클라이맥스라는 큰 산을 향해 올라가는 액션 영화의 익숙한 리듬을 이 영화는 버린다. 대신 낮지만(그래서 심심하지만) 일정한 긴장의 수위를 시종 지켜간다. 이는 현란한 이야깃거리보다 어둡고 묵직한 무드 자체가 이 영화의 비교우위 지점이라고 판단한 ‘헬보이’의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바꿔 얘기하자면, 시끌벅적하고 뒤끝 없는 여름용 블록버스터를 이 영화에 기대한다면 대단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캐릭터들(흥분하면 불을 뿜어대는 여성 리즈, 남의 생각을 읽는 능력을 가진 지적인 양서류 에이브, 고통 받을수록 쾌감을 느끼는 라스푸틴의 변태 부관 크뢰넨)의 운신의 폭이 좁게 느껴지는 것은 헬보이의 내적 갈등에 절대적 무게 중심을 둔 이 영화가 안고가야 할 숙명적인 허점이다.

헬보이 역을 맡은 배우는 론 펄만. TV 시리즈 ‘미녀와 야수’, 영화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에일리언4’ 등에 출연해 네안데르탈인을 연상시키는 외모를 과시했던 그의 연기는 그간 인상적인 얼굴에 갇혀 평가 절하된 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맨얼굴보다 훨씬 무지막지한 헬보이의 모습(분장) 덕에 그의 연기력이 비로소 얼굴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춤출 수 있게 된 점도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믹’ ‘블레이드2’를 통해 잡탕 상상력이 섞인 어두운 감성을 보여 온 멕시코 출신 길레르모 델 토로 감독 연출.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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