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문태준/‘반가사유상’과 마주 앉다

  • 입력 2004년 8월 13일 18시 56분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보 제78호와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 두 점을 이례적으로 동시에 공개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불볕더위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간 불교조각실에는 침묵이 발목을 흥건하게 적실 만했다. 두 분의 부처님이 세상 속으로 나오시어 소란한 속세의 중심에서 깊은 적요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실 한쪽에 마련된 긴 의자에 한 시간 넘게 오도카니 앉아 머물다 가는 관람객들도 꽤 눈에 띄었다. 생각하는 부처님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어떤 명상에 들었다 가는 것일까. 그러면서 동시에 중생계로 이처럼 내려온 두 분의 부처님이 어떤 삼매에 들어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폭격에 반쯤 허물어진 벽에 기댄 이라크 소녀의 두려운 눈빛을 신문지상에서 접해야 하는 요즘의 아침은 참으로 곤혹스럽다. 세상은 ‘한 꽃송이’가 아니라 ‘불타는 집’이다. 우리의 마음 어딘가에 과연 ‘평화’와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불인인지임·不忍人之心)’이 깃들어 있는지 의구심마저 든다.

그러던 차에 맛본 이 경이로운 적정(寂靜)과 묵상의 세계는 마치 저 궁벽의 산 속을 애써 찾아가 만난 적멸보궁의 공간 같았다. 사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침묵’을 잊고 ‘나’를 잊고 사는지 모른다. 일상의 순간순간 스스로 깨어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 것인가.

산사 스님들의 안거(安居)나 신부님들의 피정(避靜)을 일반인이 따라하긴 힘들다. 하지만 틈틈이 자신을 고요하게 되돌아보아 우리 마음의 본래자리가 어디인지 스스로 챙겨보는 것은 어떨까. 조금은 낯설지만 ‘걷기 명상’도 유행이라고 한다. 한발 한발 자기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천천히 걸음으로써 습관에 이끌려 하는 행동이나 생각, 말을 멈추고 되돌아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이런 명상의 습관이 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하면 어떤 형태이건 명상은 우리들에게 ‘입아아입(入我我入)’의 진리를 깨닫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저것이 나한테 속해 있고, 내가 저것에 속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가족이나 이웃, 다른 뭇 생명들로부터 동떨어져 홀로 존재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목을 쓰러뜨리듯 나를 쓰러뜨림으로써 나 아닌 것을 받들어 섬기게 된다는 것! 받들어 섬기다 보면 분탕질의 흙물이 천천히 가라앉듯 분노심도 이기심도 탐욕도 사그라질 것이다.

한 스님이 들려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여기 있는 꽃을 보고 못생겼다고 욕하면 누가 손해죠? 그 꽃 예쁘다고 하면 꽃이 좋을까요, 내가 좋을까요?” 꽃을 바라보면서 갖게 되는 내 생각에 따라 내 마음이 행복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저 꽃이 불편하면 나 또한 불편하다. 이 또한 ‘입아아입’이기 때문이다.

반가사유상을 접하게 된다면 잠시나마 급행열차에 실려 가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려놓길 바란다. 빠르게 요동치는 자신의 마음을 의자에 내려 앉혔다 가길 바란다. 원망을 원망으로 되갚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 마음을 되돌려 놓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연꽃 만나고 가는 한 줄기 맑은 바람 같이 잠시 쉬어 갈 일이다. 그것이 세상 속으로 나오신 두 분 부처님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조용한 ‘할(喝)’일지 모른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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