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의 시는 모두 72명의 시인으로부터 ‘좋아하는 시’로 추천받아 최다를 기록했다. ‘자화상’ ‘동천(冬天)’ 등 1회 이상 추천받은 그의 시는 모두 23편. 미당에 이어 백석(40명), 김수영(36명) 순으로 추천을 많이 받았다. 미당의 친일경력에 주목해 그의 시가 보여준 미학까지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80년대 후반부터 시단 안팎에서 일어왔던 점에 비춰볼 때 이번 결과는 의외다.
문학평론가인 고려대 이남호 교수는 “지난 10여 년간 정치적 관점에서 문학활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미당 폄하 분위기가 짙었고, 대중들이 그런 매도 분위기에 쉽게 휩쓸렸다”며 “그러나 시인들 사이에서 미당이 여전히 ‘한국 현대시의 최고봉’이라는 사실은 그의 시가 정당한 평가를 받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인들이 “좋아한다”고 가장 많이 꼽은 시는 김춘수의 ‘꽃’이었다. 이어 ‘서시’(윤동주),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백석), ‘자화상’(서정주), ‘낙화’(이형기), ‘님의 침묵’(한용운) 순이었다. 문학평론가 이재복씨는 이들 최상위권 애송시를 보면 “하나 같이 연시(戀詩)의 형태를 띠고 있거나 자기고백 차원의 외로움, 괴로움 같은 정서를 다루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10명 | ||
순위 | 시인 | 추천시인(명) |
1 | 서정주 | 72 |
2 | 백 석 | 40 |
3 | 김수영 | 36 |
4 | 김소월 | 34 |
5 | 윤동주 | 32 |
6 | 김춘수 | 30 |
7 | 정지용 | 27 |
8 | 박목월 | 23 |
9 | 김종삼 | 16 |
신경림 | 16 | |
*설문대상자가 복수 추천한 결과를 합산한 것임. |
이번 조사에서는 또 신경림을 제외하면 민중민족계열 시인들이 거의 추천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남호 교수는 “(일반 대중보다) 시인들 사이에서 유독 사랑을 많이 받는 시인으로 백석과 김종삼을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백석의 경우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같은 이른바 ‘북방시편’들이 고달픈 삶을 사는 시인들에게 위안이 된 것 같다”며 “김종삼의 경우 과작(寡作)이며 시도 짧지만 문학사의 외곽을 떠도는 보헤미안 같은 성격이 시인들의 관심을 끈 것 같다”고 분석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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