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국내 제약업계에는 3대 금기가 있었다.
드링크는 ‘박카스’와 붙지 마라, 소화제는 ‘훼스탈’과 부닥치지 마라, 진통제를 두고 ‘사리돈’과 싸우지 마라.
그 ‘사리돈’에 ‘게보린’이 도전장을 냈다. 당시 ‘게보린’의 광고를 맡게 된 카피라이터는 고심 끝에 한 줄의 카피를 탄생시켰다. “맞다, 게보린!”
이 카피를 썼던 사람은 이강우씨(63). 그는 이 광고를 만든 후 2년간은 ‘엄청난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가 이 광고를 만든 줄도 모르고 사람들은 그의 앞에서 “게보린 광고만 보면 후진적인 국내 광고 수준이 드러나 창피하다”며 욕했다. 그러나 그 촌스러운 광고는 ‘게보린’의 인지도를 높여 마침내 일등 브랜드 ‘사리돈’을 꺾었다.
광고인들의 영원한 화두, ‘크리에이티브(창의성)’. 이 책은 광고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우리 실정에 맞는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길을 개척하며 ‘신화’를 만들어 온 국내 광고인들의 철학과 조언을 담은 인터뷰 모음집이다. 저자는 광고인 출신으로 현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카피라이터들의 대부로 꼽히는 김태형씨(68)를 비롯해 25년 이상 광고기획자(AE)로 현장을 뛴 김세민씨(55), ‘게보린’의 광고 카피를 만든 이강우씨 등 10명의 육성을 담고 있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미인은 잠꾸러기’ 등 누가 들어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인상 깊은 광고들을 탄생시킨 주역들이다. ‘우리 시대 광고 인물 열전’이라는 부제와는 달리 창의력 넘치는 인물로 알려져 있긴 하나 ‘광고인’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코미디언 전유성씨 등 다소 의외인 인물도 10명 중에 포함됐다.
이들 10명이 들려주는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철학은 각기 다르다. 광고에 대한 생각만 들어봐도 “예술이다”부터 “상업 예술이다” “과학이다” “건축이다” “절대 예술이 아니다”까지 다양하다.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이들의 다양한 철학 중엔 꼭 광고인이 아니더라도 ‘창의력이 곧 경쟁력’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귀담아들을 만한 부분이 많다.
‘남하고 다르게 잘하고, 남이 따라하게 되는 것, 그것이 크리에이티브’라는 말도 그렇다. 전에 나왔던 것 혹은 다른 사람이 한 것보다 더 좋아야지, 단지 다르게만 했다고 해서 창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창의력 하나로 웃고 우는 업종에서 30년을 넘게 버텨 온 이들이 조언하는 개인의 창의력 계발 방법?
“문화 접촉이 가장 중요해요.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 어떻게든 문화와 밀착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창의적일) 가능성이 더 크죠.”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