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예술경영’ 시험무대…공연장 예술가 首長 시대

  • 입력 2004년 8월 22일 18시 25분


최근 서울시내 4개 주요 공연장이 ‘예술가 수장(首長)’ 체제를 굳혔다. 국악인 출신의 김용진 음악협회 회장이 17일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임명됐다. 이에 앞서 올 5월에는 피아니스트 김용배씨가 서울 예술의 전당 사장으로, 6월에는 무용가 최태지씨가 정동극장 극장장으로 취임했다. 국립극장의 경우 국악인 겸 연극인인 김명곤씨가 1999년 극장장으로 임명돼 현재 연임 중이다. 예술가들의 공연경영계 입성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있을까.

○어떻게 임명했나

예술의 전당, 국립극장, 정동극장은 문화관광부가 각각 사장과 극장장에 대한 임명권을 쥔 공연장.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세종문화회관 이사장의 제청을 받아 서울시장이 임명한다.

문화관광부 관계자는 “최근 정동극장장과 예술의 전당 사장 인선에는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영화감독 출신인 이 전 장관이 “예술가들이 예술경영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혀 왔다는 것. 세종문화회관의 경우 이사진이 “아직은 관료 출신 관장 시절의 폐해를 예술가의 눈으로 바로잡을 단계”라며 예술가 출신 사장 선출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술가 수장, 뭐가 다른가?

5년째 재직 중인 김명곤 국립극장장은 “예술가들의 창작의욕이 행정편의 때문에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데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작품 제작 중 돌연 추가예산이 필요한 경우 제동이 걸리기 쉬운데, 본인이 창극 등을 제작했던 경험을 되살려 최대한 지원해주도록 노력한다는 것. 국립극장 관계자들은 “1년 단위로 편성되는 예산 때문에 장기 계획을 세우기 어려웠는데, 김 극장장은 이에 구애받지 말고 2∼3년 뒤의 공연계획도 세우도록 독려한다”고 말했다.

김용배 예술의 전당 사장은 최근 전당 내 리사이틀홀 평일 공연을 2회로 늘려 대관 적체를 해소하기로 했다. “신진 연주가들이 귀국독주회 대관부터 애로를 겪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

최태지 정동극장장과 김용진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직접 자기 공연을 ‘팔아’ 본 예술가로서 관객의 눈높이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 극장장은 “관객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늘려나갈 것”을, 이들은 “다양한 계층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을 약속하고 있다.

○외국 경우 어떻게?

이용관 부천문화재단 전문위원은 “공연 선진국의 경우 경영 전문가 출신인 행정감독과 예술 전문가 출신인 예술감독이 분리돼 있어 각자의 영역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링컨센터, 영국 바비컨 센터 등 유명 공연장의 경우 예술감독과 행정감독이 별도로 임명되며 이사회가 실무 차원에서 이들을 감독한다.

문화부 관계자는 “외국은 경영 전문가가 기획 부문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관행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비 예술인인 관료 출신의 극장장이 취임하면 기획 부문에 간섭하는 것을 배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전망

예술가 출신의 공연 행정가가 지속적으로 ‘공급’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을 체험한 예술가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등 3개 예술단체가 재단법인화 돼 예술가 출신 단장들이 경영 책임을 맡았던 데다가 세종문화회관도 2005년부터 서울시 교향악단 등 주요 산하단체들의 재단법인화를 꾀하고 있다.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출신으로 정동극장장이 된 최태지씨는 “준(準) 공공적 단체의 예산을 책임져본 경험이 극장장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