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역사와의 대화]<14>초창록

  • 입력 2004년 8월 23일 2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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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멸망을 예언한 ‘초창록’(영조 2년). 이 글은 조선이 망한 해를 을사년(1905년)이나 경술년(1910년)이 아니라 임자년이나 갑술년으로 상정했다는 점에서 실제 예언서라기보다는 18세기 영남사림의 조선왕조에 대한 반감의 발로로 해석된다.
조선왕조의 멸망을 예언한 ‘초창록’(영조 2년). 이 글은 조선이 망한 해를 을사년(1905년)이나 경술년(1910년)이 아니라 임자년이나 갑술년으로 상정했다는 점에서 실제 예언서라기보다는 18세기 영남사림의 조선왕조에 대한 반감의 발로로 해석된다.
“한양 이씨(조선)의 운세는 언제 끝나겠습니까?”

“임자년이나 갑술년이 되면 수명이 다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고난은 겪지 않겠습니까?”

“고목에는 벌레가 생기는 법이고, 그것을 제거하자면 당연히 고통을 거치기 마련이다.”

“이러한 때 가문을 보존하자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용히 덕을 쌓고 선한 일을 하면 하늘과 조상이 보살필 것이다.”

영조 2년(1726) 아들 초창(蕉窓)의 질문에 아버지 반계(磻溪)가 답한 내용의 일부이다. 비기류(秘記類)로 분류되는 이 자료는 의성 김씨 지촌 김방걸(芝村 金邦杰) 종가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고문서다. 이 예언서는 부자의 대화 형식으로 구성돼 있으며, 왕조의 운명 등 민감한 사안들을 담고 있어 그들의 실명은 알려진 것이 없다. 단지 그들이 남씨(南氏)이고 반계가 ‘마상록(馬上錄)’이란 다른 예언서의 저자라는 것 정도만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조선왕조의 멸망 시기에 대한 예언뿐만 아니라, 한말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외척 외세에 의한 왕조의 피폐와 혼란, 영웅들의 각축과 진주(眞主·새 시대의 지도자)의 등장 과정 등의 내용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 자료는 단순한 예언의 단계를 넘어 18세기 영남사림의 조선왕조에 대한 반감의 일단을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2년 뒤인 1728년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영조의 왕통을 부정한 무신난(戊申亂·이인좌의 난)이 발생하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 예언서는 그러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인조반정(1623) 이래 영남의 남인들은 서인에서 노론으로 이어지는 장기집권 체제로 인해 중앙 정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차단당하고 있었다. 이 시기 왕조의 멸망까지 점친 ‘정감록(鄭鑑錄)’ 등 예언서가 재야 사림 사이에 급속도로 파급되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숨어 있다.

그러나 ‘초창록(蕉窓錄)’은 또 다른 예언서인 ‘격암록(格菴錄)’이나 ‘홍수지(紅袖誌)’와 달리 난세(亂世)의 도피처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각종 예언서도 올바른 마음과 경건한 자세를 갖고 보지 않으면 효험이 없다는 것이 반계의 논지였다. 요컨대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동요하지 않고 바른 자세로 선(善)을 쌓고 인(仁)을 행하면 어려움을 극복할 지혜가 자연히 생겨나 자신과 가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예언서의 등장은 염세적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목표는 바로 도덕적 이상사회의 도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었던 셈이다.

설석규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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