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금지된 욕망은 아름답지만… ‘나쁜 교육’

  • 입력 2004년 8월 25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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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시절 마놀로 신부의 욕망의 대상이 돼야했던 소년 이나시오(왼쪽)는 친구인 엔리케(오른쪽)와 ‘금지된 장난’에 빠진다. 이들은 모두 ‘나쁜 교육’의 희생자이자 그 주체다.- 사진제공 프리비젼
신학교 시절 마놀로 신부의 욕망의 대상이 돼야했던 소년 이나시오(왼쪽)는 친구인 엔리케(오른쪽)와 ‘금지된 장난’에 빠진다. 이들은 모두 ‘나쁜 교육’의 희생자이자 그 주체다.- 사진제공 프리비젼
남자인 당신에게 묻겠다. 어느 날 당신의 기타반주에 맞춰 천사 같은 목소리로 ‘문 리버(Moon River)’를 부르는 미소년과 마주하고 있다고 하자. 그리고 소년의 아름다움에 당신이 미혹됐다 하자. 소년을 나도 모르게 탐했다 하자. 그러면 이런 절망적인 사랑에 빠진 당신을 사람들은 뭐라고 부를까. 답은 ‘동성애자’.

자신에겐 특별한 사연이 보편화 개념화되면 늘 생뚱맞고 공격적인 단어가 돼버리기 마련이다.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이런 개념화의 수순을 거꾸로 뒤집는다. 그는 ‘동성애’ ‘트랜스젠더’ ‘양성애’ ‘성도착’ 같은 부정적이고 편견에 가득 찬 단어들을 자신의 영화 속에 불러 모은 후 하나 하나 아주 사적이고 내밀하고 소중한 사연들로 인수분해 해버린다. 그의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년)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해 버린 남편, ‘그녀에게’(2001년)에서 식물인간을 사랑하는 남자 간호사를 통해서도 나타나는 이런 모습은 알모도바르 영화가 가진 파격과 도발성, 탐미주의의 본질이기도 하다.

영화감독 엔리케에게 무명배우 이나시오가 찾아온다. 16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신학교 시절 친구 이나시오는 금지된 사랑을 나눴던 엔리케의 첫사랑. 앙겔이란 새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이나시오는 자신이 쓴 ‘방문객’이란 시나리오를 엔리케에게 건넨다. 시나리오에는 신학교 문학교사였던 마놀로 신부가 이나시오를 성추행했던 비밀스런 과거가 담겨 있다. 엔리케는 영화화를 결심하지만, 이나시오가 자신에게 주연인 ‘이나시오’ 역을 달라고 주장하면서 갈등이 일어난다. 이나시오의 고향집을 찾아간 엔리케는 이나시오의 어머니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다음달 17일 개봉되는 ‘나쁜 교육’에서 동성애라는 낯선 취향을 극복해 내는 열쇠는 ‘아름다움’이다. 소년 이나시오가 ‘문 리버’를 부르는 모습을 마놀로 신부가 글썽이는 눈망울로 바라보는 장면은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아름다움에 중독 된 인간’의 이야기로 바꿔놓는다. 이런 멈출 수 없는 사랑은 결국 평생을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욕망이 돼 버리며, 이런 욕망은 야수파의 그림처럼 참을 수 없는 원색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알모도바르 화면의 독특한 미감(美感)이 된다.

이 영화는 △현실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시나리오 △사건의 진실이란 세 가지 이야기를 교차시키면서 느와르와 스릴러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이런 진실 게임이 아주 긴박하거나, 밝혀지는 진실이 관객의 허를 찌르는 편은 아니다.

사실 ‘나쁜 교육’을 통해 알모도바르 감독이 도달하려는 지점은 ‘섹스 스릴러’가 아니다. 그는 퍼즐 게임의 해답보다는 욕망을 덩어리째 휙 객석으로 던져버리는 데 더 많은 관심이 있다(이 ‘덩어리’를 관객이 감당할 수 있는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등장하는 게이와 트랜스젠더(혹은 여장남자)들의 눈빛과 입술의 움직임, 심지어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하나하나에서 뚝뚝 떨어지는, 운명처럼 지긋지긋한 정욕을 감지하는 일이다.

영화 ‘이투마마’ 출연에 이어 이 영화에서 앙겔 역을 맡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남자 ‘팜므 파탈’로서 손색이 없는 것은 그의 짧아서 귀여운 다리와 탐스러운 엉덩이 때문이 아니다. 늘 뭔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하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길 원치 않는 듯한 피학적 눈빛 때문이다.

12세 소년 엔리케는 화장실에서 친구 이나시오에게 속삭인다. “나는 쾌락주의자”라고…. 우리는 이른바 ‘좋은 교육’을 통해 욕망을 억제하는 법을 배운다. 반대로 ‘나쁜 교육’은 욕망을 가르친다.

올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 18세 이상 관람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이 기사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유재인씨(이화여대 광고홍보학과 4년)도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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