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개봉되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 주는 웃음은 “깔깔깔” 같은 폭발성이 아니라, “이히히히” 같은 좀 더 내밀한 종류에 가깝다. 이 영화는 관객의 감정선을 말초적으로 자극하며 웃음을 자아내기보다는 그 내용의 구체성 속에 소소한 웃음을 담아놓는 쪽이다.
시기와 질투, 편 가르기와 차별, 맹목적 추종이 물밑에서 꿈틀대는 미국 고교 내 ‘정글의 법칙’에 대한 관찰과 연구가 묻어난다. 이는 각본을 쓴 TV쇼 ‘새터데이 라이브’의 작가 티나 페이가 로절린드 와이즈맨의 베스트셀러 ‘여왕벌과 여왕벌을 꿈꾸는 아이들:당신의 딸을 파벌과 남자 친구 그리고 여러 가지 현실적인 청소년기의 문제로부터 도와주는 법’을 기초로 삼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라는 한국어 제목이 ‘섹시’한 건 사실이지만, 이 영화의 내용을 정확히 드러내는 것은 ‘비열한 소녀들(Mean Girls)’이란 원제다. 이 영화는 여고생들의 일상을 무슨 동물생태학 보고서처럼 담았다. 요일별로 드레스 코드(예를 들어 ‘분홍 블라우스 입는 날’처럼)를 정해 놓고 지키지 않을 경우 집단에서 ‘왕따’시키고 링 귀고리조차 ‘여왕벌’의 허가 없이는 맘대로 하지 못하는, 살벌해서 배꼽 잡는 현실을 통해 여고생들 사이의 권력구조와 배타성, 중상모략의 현실을 꼬집는다. 복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어느 새 케이디 역시 ‘짝퉁 여왕벌’이 돼버리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이 영화는 일반적인 청춘 코미디 속 ‘박해 받는 착한 여고생의 승리’라는 손쉬운 선악구도의 흐름을 밟지 않는다.
‘퀸카로…’는 그러나 ‘뒤끝’이 짜릿하지 못하다. 심심하다. 주도면밀하게 디테일을 나열하면서 갈등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올리던 영화는 체육관에 전원 집합한 여학생들이 차례로 자아비판을 통해 서로에 대한 원한을 단박에 풀어버리는 클라이맥스 지점 이후 너무 손쉽고 또 순진하게 미끄러져 내린다.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두 가지 별도 정보. 우선 ‘자뻑파’로 번역된 ‘자아도취에 빠진 공주병 환자들의 모임’의 영어식 표현은 ‘The Plastics’. ‘성형수술한 아이들의 모임’이란 뜻이다. 또 새 ‘여왕벌’에 등극하는 케이디 역의 린지 로한은 온몸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미 주근깨 등 잡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이런 피부를 가지고도 여왕벌에?’ 하고 리얼리티를 의심하지 말 것. 피부에 멜라닌 색소가 부족한 백인들에겐 왕왕 나타나는 현상인지라 백인 사회에서 미인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프리키 프라이데이’의 마크 워터스 감독 연출.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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