進은 금문에서 새(추)가 걸어가는(착) 모습을 형상화했다. 새가 걸어가는 특징은 무엇일까? 새를 자세히 살피면 앞으로만 걸어가지 뒤로는 걷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進은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비록 걸음이 느리기는 하지만 뒤로 가지 않고 오직 앞으로만 전진하는 새의 걸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은 새의 걸음처럼 빠르지도 못하면서 한편으로는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는 뒤돌아보거나 딴 곳을 쳐다보지 않고 하나의 일에만 매진하는 것이 대단한 인내심을 요구하고 때로는 미련해 보이는 일이지만 그것이 앞서 나가는 일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근대화와 자본주의화의 물결 속에 쉽고 빠른 것만 추구하는 현대인들이 한번쯤 곱씹어 보아야 할 글자가 아닐까?
步는 갑골문에서 두 개의 발(止·지)로 구성되었는데, 위쪽이 오른쪽 발을, 아래쪽이 왼쪽 발을 그려 각각 다른 발의 모습이다. 두 발로 걷는 모습을 그렸으며, 발이 앞쪽을 향해 있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올라가는 것과 동일한 개념이다. 오르다는 개념은 阜(언덕 부)를 더한 陟으로 표현했는데, 황토지역에서는 흙 언덕이나 계단을 오르는 것이 가장 일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비해 뒤로 가는 경우는 발의 방향을 반대로 하여 (강,항)으로 그렸는데, 降의 자형에 잘 나타나 있다. 降은 陟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흙 언덕(阜)을 내려가는 모습을 그렸다. 이로부터 下降(하강)처럼 내려 가다는 뜻이 생겼고, 다시 降伏(항복)처럼 굴복하다는 뜻이 생겼다. 다만 굴복하다는 뜻으로 쓰일 때는 ‘항’으로 읽힘에 유의해야 한다.
그래서 進步란 사람이 오르막을 차고 오르듯이, 뒤로 갈 수 없는 새의 걸음처럼 느리고 미련해 보일망정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따라서 진보란 革命(혁명)이나 革新(혁신)과 같이 단번에 세상을 바꾸겠다는 야망과는 궤를 달리하는 글자이다. 進步는 빠른 속도나 급속한 변화가 아니라 아무리 대단한 목표도 작은 것의 꾸준한 실천에서 달성된다는, 말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려운 인내심의 필요성을 역설한 글자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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