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 …똑똑한 과학자

  • 입력 2004년 8월 27일 17시 19분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브랜다 매독스 지음 나도선·진우기 옮김/435쪽 1만8000원 양문

그녀의 별명은 다크 레이디(dark lady). 그녀로부터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의 영예를 앗아간 제임스 워슨과 프랜시스 크릭, 그리고 모리스 윌킨스 세 남자가 붙인 별명이다. 유대계 영국인으로 검은 머리를 지녔던 그녀의 외모를 빙자한 이 표현에는 고집 세고 독점력 강하며 촌스러운 옷을 입는 여자라는 비난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훗날 이 표현은 1962년 노벨상을 수상한 이 3인방을 평생 쫓아다닌 악몽이 된다. 또한 과학의 전당에서 남성들의 그늘에 묻혀야 했던 비운의 여성을 상징하는 용어가 됐다.

이 책은 20세기 과학사에서 가장 말 많은 사건, DNA 나선구조 발견의 숨은 공로자였던 그 여자, 로잘린드 프랭클린(1920∼1958)의 전기다. 유복한 가문에서 태어난 프랭클린은 명석한 천재였다. 케임브리지대에서 물리화학을 전공한 프랭클린은 분자결정에 X선을 쬐어서 얻는 X선 회절을 통해 분자의 3차원 구조를 밝혀내는 X선 결정학 전문가가 된다.

그녀는 윌킨스가 이끌던 킹스칼리지 DNA 연구팀에 들어간다. 프랭클린은 그곳에서 1952년 DNA 분자의 이중나선구조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X선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완벽주의자로 실험을 중시한 프랭클린은 허술한 가설을 선호한 윌킨스와 불화를 빚는다.

1953년 DNA 이중나선구조를 구명한 프랜시스 크릭 박사(오른쪽)와 제임스 워슨 박사가 대형 DNA 모형을 놓고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윌킨스는 프랭클린 몰래 그 사진을 친구이자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 연구원으로 있던 크릭에게 보여줬고 크릭은 다시 동료인 워슨에게 이를 보여줬다. 당시 킹스칼리지와 캐번디시는 같은 재단에서 연구기금을 받고 있었는데, 워슨과 크릭의 어설픈 가설이 프랭클린으로부터 통렬한 반박을 받은 뒤 DNA 연구는 킹스칼리지가 전담하기로 합의가 이뤄진 상태였다.

그러나 워슨과 크릭은 프랭클린의 X선 사진에서 결정적 힌트를 얻어 이 합의를 깨고 1953년 이중나선 모델을 발표한다. 뒤통수를 맞은 윌킨스는 1962년 결정적 자료 제공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된다. 그러나 1958년 서른여덟 나이에 암으로 요절한 프랭클린은 그 영광을 누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런 내막도 몰랐다.

이런 내용이 세상에 밝혀진 것은 워슨이 1968년 출간한 ‘이중나선’에서 프랭클린을 융통성 없고 직관력 부족한 ‘못된 로지’로 묘사하면서였다. 이 책은 그것이 남자들의 죄책감이 낳은 편견임을 보여준다. 프랭클린은 원만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쾌활하고 세련된 여성이었다. 그녀의 죄는 남성들이 불편해할 만큼 지나치게 똑똑했고, 그들보다 오래 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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