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서울]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인사동길

  • 입력 2004년 8월 27일 18시 59분


미로 같은 서울 인사동 뒷골목은 때로 두세 사람도 나란히 걷지 못할 정도로 좁아진다(왼쪽). 이 길에 들어서면 마음의 벽은 점점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맞선으로 만나 가식적인 대화를 나누던 준영(감우성)과 연희(엄정화)가 전통찻집에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듯이.
미로 같은 서울 인사동 뒷골목은 때로 두세 사람도 나란히 걷지 못할 정도로 좁아진다(왼쪽). 이 길에 들어서면 마음의 벽은 점점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맞선으로 만나 가식적인 대화를 나누던 준영(감우성)과 연희(엄정화)가 전통찻집에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듯이.

“왔다 갔다 택시비보다 여관비가 더 쌀 것 같은데요.”

맞선을 마치고 집에 가야 할 시간, 준영(감우성)의 말에 연희(엄정화)는 “어차피 곯아떨어질 것 같으니…”라고 대답한다. 이어지는 장소는 여관 안. 물론 두 사람이 그냥 곯아떨어질 리 만무하다.

도전적인 설정과 엄정화의 파격 노출로 화제를 뿌렸던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2년). 그러나 아무리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는 두 남녀라 해도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만리장성 쌓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준영과 연희는 모두 제도권 밖의 생활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 잘 알고 있고, 사회 관습의 금을 넘을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의 일탈은 아슬아슬하고 또 위선적이다.

그러니만큼 처음 만난 자리에서는 ‘37번째 혹은 38번째 맞선 나온 여자’처럼 굴거나, ‘증명사진 찍기에 적당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탐색전이 이어지면서 그들이 머무르는 시공간은 점점 낮에서 밤으로, 개방적인 곳에서 내밀한 곳으로 바뀐다.

인파가 북적이는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KFC 앞에서 만난 그들은 커피숍에 있다가 극장에 가고, 테이블 사이의 간격이 넓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다.

두 사람이 마침내 마음을 여는 곳은 인사동의 전통찻집. 전통술을 마시며 연희는 조금 전에 본 영화는 사실 전에 봤고, 한 달 동안 10명이 넘는 남자를 만났다고 고백한다. 차를 마시던 준영은 술잔을 달라고 하고, 둘은 지하철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신다.

맞선으로 만난 남녀가 벽을 허물고 마음속 이야기를 속닥일 만한 공간으로 인사동 전통찻집만 한 곳이 있을까. 인사동 골목길은 미로처럼 복잡하고 두 사람이 나란히 걷지 못할 정도로 폭이 좁은 곳도 있다. 그 길에 들어서서 개성 강한 전통찻집으로 향하는 것은 ‘이제 좀 더 사적(私的)인 이야기를 하자’는 선언과 같다.

조선시대 인사동 길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고급 주택가와 육의전거리를 연결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조선이 몰락하면서 대저택은 잘게 나뉘었고 그 사이로 골목이 생겼다.

지금의 인사동은 고서화 화랑과 모던 화랑, 전통예술품 상점, 전통찻집, 전통음식점이 한데 섞여 어제와 오늘이 공존하는 장소다. 2002년에는 문화지구로 지정됐다. 그러나 한양대 서현 교수 같은 이는 이 길이 경복궁까지 이어져야 한다며 “인사동 거리는 미완성”이라고 말한다.

엄정화와 감우성이 촬영한 찻집은 인사동에 실제로 있는 ‘옛 찻집’. 인사동에는 ‘옛 찻집’이 두 곳, ‘신 옛 찻집’이 한 곳 있는데 영화에 나온 곳은 인사아트프라자 맞은편 2층에 있는 곳이다. 입구에 엄정화의 자필 사인이 액자에 걸려 있다. 인사동길은 지하철 1호선 종각역과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사이에 있다.

(도움말=서울영상위원회 www.seoulfc.or.kr)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이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송상아씨(연세대 생활디자인 4년)도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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